영화 한 편이 끝나고 나서 가족에게 연락하고 싶어진 적이 있다면, 그건 꽤 드문 경험입니다. 저는 를 보고 나서 정확히 그랬습니다. 코미디인 줄 알았던 영화가 후반부에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내면서, 평생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웃기다가 갑자기 무너지는 영화, 반전 결말이 이걸 만든다영화 초반은 솔직히 말해 정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상만이 병원에서 깨어나더니, 갑자기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들이 붙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변태 할아버지, 울보 아줌마, 담배만 찾는 골초 아저씨,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이 네 귀신이 상만의 몸을 번갈아 점령하며 각자의 욕구를 채우려 하는 장면들은 분명히 웃깁니다..
영화 를 보기 전, 저는 또 하나의 평범한 보험 범죄 스릴러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순규가 유나의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단 몇 마디로 정확히 짚어내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심리조종: 친절이 어떻게 범죄의 도구가 되는가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사람"은 정말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가족 문제로 무거운 시기에 누군가 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해 주면, 평소보다 훨씬 빨리 경계가 허물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게 꼭 나쁜 경험이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사람이 제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방향대로 판단을 유도했..
이 영화를 그냥 제이슨 스타뎀 액션물로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리츠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무력감이었습니다. 법이 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우리는 어디에 기댈 수 있는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꽤 거칠게 던집니다.배경과 맥락 — 경찰을 노린 연쇄 살인마의 등장영화의 배경은 꽤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브랜트는 범죄자를 과잉 진압했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문제적 형사입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경찰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 살인마 '블리츠'가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인물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규칙의 경계를 넘나 든다는 것입니다.블리츠는 수사 용어로 표현하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 범행 패턴을 보입니다. 여기서 사..
연쇄살인마는 당신이 상상하는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화 은 살인마의 얼굴로 평범한 이웃, 익명의 댓글러, 앱 속 낯선 상대를 지목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라, 지난달 중고 거래에서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익명성이 만든 나비효과 — 연진의 이야기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연진은 진상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익명 커뮤니티에 풀었습니다. 살인을 부추기는 글을 올리고, 누군가의 하소연에 "그냥 해버려"식의 조언을 달았죠. 그 행위 자체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커뮤니티를 오가며 느낀 건데, 익명 공간에서의 언어는 현실에서라면 절대 꺼내지 않을 말들을 너무 쉽게 허용합니다.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이른바..
새 직장에서 첫 한 달, 저는 퇴근 후에도 업무 매뉴얼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요. 그 기억 때문에 영화 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언어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던 주인공 질의 이야기는, 생존의 언어가 어떻게 기억의 증언으로 바뀌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생존의 언어 — 극한 상황이 만들어낸 즉흥의 기록1942년, 나치 점령 하의 유럽. 유대인 질은 집단 총살 직전 "자신은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페르시아인 포로를 확보하면 포상이 주어진다는 명령 덕분에 그는 기적적으로 처형을 면하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레자라는 가명을 얻은 질에게 독일군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스크린 앞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웃기다가, 무섭다가, 결국 씁쓸해지는 그 감정의 흐름이 제 경험과 너무 가깝게 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반지하에서 시작된 계층구조, 그 절박함의 무게영화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와이파이를 찾아 핸드폰을 들고 변기 위로 올라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택 가족은 박스 접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처지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설정하는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닙니다. 선택지 자체가 없는 삶, 그것이 계층구조(class structure)의 바닥입니다. 여기서 계층구조란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기회의 불평등한 분배로 형성되는 ..
새로운 환경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도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하고 넘긴 적,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을 보는 내내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17년 조던 필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귀신이나 괴물 없이도 왜 이렇게 무서운지 보고 나서도 한참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불편한 친절 — 친절한 얼굴 뒤에 숨은 것들주인공 크리스는 흑인 남자친구로서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갑니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지만, 로즈 가족에게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계속 참습니다. 저도 첫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사가 제 외모나 배경을 칭찬하는 것 같은데, 어딘가 불편했습니다.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불편함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더군요.로즈의 ..
귀신을 베는 무관과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왕녀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이야기라기에, 로맨스에 무게가 실린 판타지 사극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가장 강하게 남은 건 두 주연의 감정선이 아니라, 조승우와 장영남이 몇 분 안 되는 등장 시간 안에 만들어낸 밀도였습니다. 은 좋은 재료를 손에 쥐고도 끝내 하나의 얼굴로 응집시키지 못한 드라마입니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상처의 공명 — 구천과 생강이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제가 을 보다가 처음으로 화면을 멈춘 건 구천이 생강 앞에서 처음으로 무너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구천은 어린 시절 익사 직전에 살아 돌아온 뒤, 잠들면 귀매(鬼魅)의 세계를 오가며 귀신을 직접 베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귀매란 이승과 저승 사이 ..
새로운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연달아 터질 때, 그냥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일을 처음 바꿨을 때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을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텨내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 소비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수리남이라는 배경, 왜 이 이야기가 가능했나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입니다. 주인공 강인구는 생계를 위해 남미 수리남까지 홍어를 팔러 갔다가, 마약 조직과 국가정보원 작전 사이에 끼어버립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배경이 나온 게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수리남은 1990년대부터 남미 마약 운송의 주요 경유지로 알려져 왔습니다. 지리적으로 남미 북동부에 위치해..
나쁜 학생 혼내주는 '사이다물'이겠거니 싶었는데요. 그런데 보다 보니 제가 교육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말들, "학생을 이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그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 단순한 응징극이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시스템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교권 판타지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의 설정은 분명히 비현실적입니다. 국가가 '교권보호국(이하 교권국)'이라는 특수 기관을 만들어 감독관을 학교에 파견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여기서 교권보호국이란, 기존 법과 제도가 학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 최강석이 설립한 기관으로, 감독관에게 교육 방식의 제한을 최소화한 특별 권한을 부여합니다. 쉽게 말해, 말로 안 통하는 학생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멈춰 세울 수 있는 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