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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그냥 제이슨 스타뎀 액션물로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리츠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무력감이었습니다. 법이 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우리는 어디에 기댈 수 있는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꽤 거칠게 던집니다.
배경과 맥락 — 경찰을 노린 연쇄 살인마의 등장
영화의 배경은 꽤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브랜트는 범죄자를 과잉 진압했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문제적 형사입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경찰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 살인마 '블리츠'가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인물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규칙의 경계를 넘나 든다는 것입니다.
블리츠는 수사 용어로 표현하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 범행 패턴을 보입니다. 여기서 사이코패스적 범행 패턴이란 피해자를 향한 감정 이입이 완전히 결여된 채, 살인을 일종의 퍼포먼스나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블리츠는 과거 자신을 체포했던 경찰들에게 복수하면서도 현장에 어떤 물리적 증거도 남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단순한 살인마 이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브랜트가 노숙자 정보원을 통해 용의자 '베리와이즈'의 단서를 확보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정규 수사망이 아닌 비공식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브랜트라는 인물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조직 안에서 '원칙대로만' 움직이는 사람보다 발로 뛰는 사람이 실제로 더 빨리 답을 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브랜트가 딱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 블리츠의 범행 동기: 과거 자신을 체포한 경찰들에 대한 원한과 복수
- 브랜트의 수사 방식: 공식 절차 외 비공식 정보원 활용
- 두 인물 공통점: 각자의 방식으로 규칙의 경계를 넘음
법과 복수 — 증거 불충분, 그 답답한 현실
블리츠가 검거된 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불쾌하고,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죄 수사에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beyond reasonable doubt)'이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는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할 때 어떤 합리적인 사람도 의심할 수 없는 수준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핵심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무고한 사람을 지키는 중요한 장치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블리츠처럼 증거 인멸에 능한 범죄자 앞에서는 이 원칙이 오히려 피해자를 외면하는 도구가 됩니다.
저도 비슷한 감정을 겪어본 적 있습니다. 상대의 부당한 행동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거나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해 바로 말하지 못했던 상황 말입니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이 브랜트가 블리츠의 석방을 지켜보는 장면에 그대로 겹쳤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법체계와 실제 정의 사이의 간극에 대해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형사소송법은 피의자 인권 보호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 자체는 필요하지만, 블리츠처럼 그 구조를 역이용하는 범죄자가 등장했을 때 피해자와 수사관이 경험하는 좌절은 영화가 아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블리츠 같은 범죄자에게는 법적 절차보다 강한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적 제재(私的 制裁), 즉 개인이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처벌을 집행하는 행위는 또 다른 폭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즉각 대응했다가 말이 지나쳤음을 나중에 후회했던 제 경험이 이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정의의 경계 — 브랜트의 마지막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대결, 브랜트의 선택은 법적 절차 바깥에 있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 "당연한 응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악인이 제거됐지만, 그 방법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이런 서사 구조를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의 관점으로 분석합니다. 도덕적 이탈이란 평소라면 윤리적으로 허용되지 않을 행동을 특정 상황에서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말합니다. 브랜트의 최후 선택이 관객에게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이 메커니즘을 영리하게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블리츠를 충분히 혐오스럽게 그려놓은 뒤, 브랜트의 행동에 감정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꼈는데, 나 자신이 그 면죄부를 너무 쉽게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오히려 더 불편해졌습니다.
출처: 한국연구재단 KCI에 수록된 범죄심리 관련 연구들에서도 지적하듯, 사적 제재를 허용하는 서사가 대중화될수록 법 집행에 대한 불신과 자경주의(自警主義, 개인이 스스로 법 집행자를 자처하는 성향)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 선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브랜트가 동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추적하는 장면에서는 다른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정말 힘든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됩니다. 브랜트의 집요함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라 동료에 대한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부분은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범인의 심리가 조금 더 깊게 다뤄졌다면 단순한 복수극 이상의 무게를 얻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 장르가 줄 수 있는 긴장감과 쾌감은 충분히 전달된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블리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실화는 아니고 켄 브루엔의 동명 범죄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다만 경찰 과잉 진압 논란이나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범죄자 석방 같은 설정은 실제 법 집행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어 현실감이 있습니다. 그 점 때문에 단순 오락 영화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 생깁니다.
Q. 브랜트의 마지막 선택은 정당한가요, 부당한가요?
A. "결과가 나쁜 자를 제거했으니 정당하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결과와 방법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옳다고 방법까지 정의롭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개인이 법 절차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관객이 그 경계를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Q. 제이슨 스타뎀 영화 중 블리츠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A. 스타뎀 특유의 묵직한 타격 액션과 짧고 직선적인 대사가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다만 다른 스타뎀 액션물보다 수사 드라마적 성격이 강해서, 폭발적인 액션만을 기대하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범죄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맞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Q. 블리츠라는 캐릭터가 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나요?
A. 블리츠는 범행 현장에 물리적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입니다. 형사소송에서 유죄 입증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수준의 증거가 필요한데, 블리츠는 이 기준을 역이용합니다. 이 설정이 단순 오락을 넘어 법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을 짚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론
블리츠는 법이 제때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분노를 스크린 위에 정직하게 꺼내놓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브랜트가 옳았는가"가 아니라 "그 선택이 옳게 느껴지도록 만든 구조가 무엇인가"였습니다.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그 통쾌함의 근거를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하고 액션의 쾌감도 충분하지만, 법과 복수의 경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범인의 심리가 좀 더 깊게 다뤄졌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그 아쉬움만큼 여운이 남는 영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