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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수업 (생존의 언어, 기억의 증언, 홀로코스트)

moobibig 2026. 8. 15. 16:30

목차


    새 직장에서 첫 한 달, 저는 퇴근 후에도 업무 매뉴얼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요. 그 기억 때문에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언어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던 주인공 질의 이야기는, 생존의 언어가 어떻게 기억의 증언으로 바뀌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생존의 언어 — 극한 상황이 만들어낸 즉흥의 기록

    1942년, 나치 점령 하의 유럽. 유대인 질은 집단 총살 직전 "자신은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페르시아인 포로를 확보하면 포상이 주어진다는 명령 덕분에 그는 기적적으로 처형을 면하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레자라는 가명을 얻은 질에게 독일군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여기서 영화가 가장 예리하게 파고드는 지점이 시작됩니다. 질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어휘(Invented Lexicon) — 쉽게 말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로 구성된 개인 발명 언어 — 는 처음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엉터리 단어들을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반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서, 외우는 행위 자체가 생존의 조건이 됩니다.

    저도 처음엔 이 설정이 좀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백 개의 단어를 스스로 지어내고 그걸 매번 동일하게 재현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질이 찾아낸 방법이 놀라웠습니다. 수용소 동료 포로들의 이름을 단어의 기반으로 삼은 겁니다. '빵'은 어떤 포로의 이름에서, '물'은 또 다른 이름에서. 이렇게 하면 단어를 기억하는 것이 곧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됩니다.

    이 전략은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억술(Mnemonic Device)의 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기억술이란 낯선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의미 있는 맥락에 연결해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방법입니다. 질에게 포로들의 이름은 바로 그 '의미 있는 맥락'이었고,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지적 기반이었습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 Memory

    코흐 대위와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대위는 전쟁이 끝나면 이란에서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꿈을 품고 있고, 그래서 페르시아어 습득에 진심입니다. 그가 질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보이는 장면들 — 사복을 챙겨주거나, 오해를 풀고 사과하는 순간들 — 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이는 친절은 가해의 구조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롭게 느껴진 부분이었습니다.

    • 질이 단어를 만들 때 사용한 방법: 포로들의 실제 이름을 가짜 어휘의 음운적 토대로 삼아 기억의 일관성을 확보
    • 코흐 대위의 이중성: 이란행 꿈을 품은 개인이자, 나치 학살 체제의 협력자라는 모순된 인물
    • 극 중 긴장의 핵심: 단 한 번의 단어 오류가 즉각적인 처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건
    요약: 질의 가짜 언어는 기억술의 원리로 유지되었고, 포로들의 이름이 그 기억의 닻이었다.

     

    기억의 증언 — 2,840개의 이름이 살아남은 이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저는 한동안 화면이 꺼진 뒤에도 가만히 앉아서 되새겼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질이 2,840명의 이름을 한 명씩 소리 내어 읽어가는 장면입니다. 그 이름들이 바로 그가 4년 가까이 외워온 가짜 단어들의 원천이었습니다. 기록에서 지워진 사람들이, 엉터리 언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셈입니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은 독일 각본가 볼프강 코라스의 단편소설 《언어의 발명》을 원작으로 합니다. 제작진은 영화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반으로 300개의 가짜 단어를 수록한 사전까지 별도로 제작했습니다. 출처: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 Names of Holocaust Victims 이 작업 자체가 영화가 말하려는 바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기도 합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 집단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역사적 사건 — 의 희생자는 흔히 숫자로 기억됩니다. 600만 명이라는 수치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숫자는 규모를 알려줄 뿐, 그 안에 담긴 각각의 삶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질이 이름을 외운 행위는 바로 이 간극을 메우는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존 스릴러로 접근했는데,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증언(Testimony)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여기서 증언이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소멸될 뻔한 존재를 언어를 통해 현재로 소환하는 행위입니다. 질의 가짜 언어는 거짓말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누구의 공식 기록보다 더 충실한 인간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인 형제와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질은 자신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대위 아주머니가 준 통조림을 몰래 나눠줍니다. 인간다움이 여유나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만 발현된다는 통념을 이 장면 하나가 조용히 반박합니다. 형제의 형이 희생되고 동생을 대신 농장으로 보내는 질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이용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또 다른 사람을 살렸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내기 어렵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논거처럼 쌓이기 때문입니다. 수천 개의 가짜 단어를 모두 기억한다는 설정이 다소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설정이 없었다면 마지막 2,840개의 이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과장처럼 보이는 장치가 결론을 완성하는 구조, 저는 이걸 꽤 치밀하다고 봅니다.

    요약: 질의 가짜 언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이름을 지키는 증언이 되었고, 영화는 역사를 숫자가 아닌 개인으로 기억하자고 말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페르시아어 수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직접적인 실화는 아니지만, 독일 각본가 볼프강 코라스의 단편소설 《언어의 발명》을 원작으로 합니다. 이 소설 자체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했을 법한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작품입니다. 제작진은 실제 아우슈비츠 희생자 이름을 기반으로 300개의 가짜 단어 사전을 별도로 만들어 현실감을 높였습니다.

     

    Q. 영화 속 가짜 페르시아어는 실제로 만들어진 건가요?

    A. 네, 실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제작진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이름에서 음절을 가져와 300개 단어가 담긴 어휘집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배우도 이 어휘집을 실제로 외우며 촬영에 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 안에서 가짜 언어가 내부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합니다.

     

    Q. 코흐 대위는 나쁜 사람인가요, 좋은 사람인가요?

    A. 이 영화가 불편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질문 때문입니다. 대위는 개인적으로 질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나치 학살 체제에 협력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개인의 친절이 구조적 악행의 책임을 덮을 수 없다는 점을 시종일관 불편한 긴장감으로 전달합니다.

     

    Q. 마지막에 질이 이름을 외우는 장면은 무슨 의미인가요?

    A. 질이 4년간 가짜 단어의 기반으로 삼았던 포로들의 이름, 총 2,840개를 한 명씩 소리 내어 읽는 장면입니다. 공식 기록에서 지워진 희생자들이 언어를 통해 다시 불려나오는 순간으로,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합니다. 역사를 숫자가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Q. 홀로코스트 영화인데 너무 잔인하지는 않나요?

    A. 직접적인 폭력 묘사보다 심리적 긴장과 언어라는 장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잔혹함을 시각적 충격에 기대지 않고 인물의 공포와 선택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라, 홀로코스트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비교적 접근하기 수월한 편입니다.

     

    결론

    <페르시아어 수업>을 보고 나서 며칠간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일상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행동이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이 영화가 아주 직접적으로 가르쳐줬습니다.

    생존을 위한 거짓말이 결과적으로 가장 충실한 증언이 되는 역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인간적 교류가 권력 구조의 책임을 지우지 못한다는 불편한 사실, 그리고 언어가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기억을 보존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제가 이 영화에서 건져낸 핵심입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이미 많지만, 이 작품은 언어와 기억이라는 렌즈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오래 남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라도 한 번 볼 만한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30-O0HSb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