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는 당신이 상상하는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화 은 살인마의 얼굴로 평범한 이웃, 익명의 댓글러, 앱 속 낯선 상대를 지목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라, 지난달 중고 거래에서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익명성이 만든 나비효과 — 연진의 이야기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연진은 진상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익명 커뮤니티에 풀었습니다. 살인을 부추기는 글을 올리고, 누군가의 하소연에 "그냥 해버려"식의 조언을 달았죠. 그 행위 자체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커뮤니티를 오가며 느낀 건데, 익명 공간에서의 언어는 현실에서라면 절대 꺼내지 않을 말들을 너무 쉽게 허용합니다.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이른바..
새 직장에서 첫 한 달, 저는 퇴근 후에도 업무 매뉴얼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요. 그 기억 때문에 영화 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언어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던 주인공 질의 이야기는, 생존의 언어가 어떻게 기억의 증언으로 바뀌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생존의 언어 — 극한 상황이 만들어낸 즉흥의 기록1942년, 나치 점령 하의 유럽. 유대인 질은 집단 총살 직전 "자신은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페르시아인 포로를 확보하면 포상이 주어진다는 명령 덕분에 그는 기적적으로 처형을 면하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레자라는 가명을 얻은 질에게 독일군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스크린 앞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웃기다가, 무섭다가, 결국 씁쓸해지는 그 감정의 흐름이 제 경험과 너무 가깝게 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반지하에서 시작된 계층구조, 그 절박함의 무게영화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와이파이를 찾아 핸드폰을 들고 변기 위로 올라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택 가족은 박스 접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처지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설정하는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닙니다. 선택지 자체가 없는 삶, 그것이 계층구조(class structure)의 바닥입니다. 여기서 계층구조란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기회의 불평등한 분배로 형성되는 ..
새로운 환경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도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하고 넘긴 적,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을 보는 내내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17년 조던 필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귀신이나 괴물 없이도 왜 이렇게 무서운지 보고 나서도 한참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불편한 친절 — 친절한 얼굴 뒤에 숨은 것들주인공 크리스는 흑인 남자친구로서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갑니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지만, 로즈 가족에게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계속 참습니다. 저도 첫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사가 제 외모나 배경을 칭찬하는 것 같은데, 어딘가 불편했습니다.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불편함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더군요.로즈의 ..
귀신을 베는 무관과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왕녀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이야기라기에, 로맨스에 무게가 실린 판타지 사극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가장 강하게 남은 건 두 주연의 감정선이 아니라, 조승우와 장영남이 몇 분 안 되는 등장 시간 안에 만들어낸 밀도였습니다. 은 좋은 재료를 손에 쥐고도 끝내 하나의 얼굴로 응집시키지 못한 드라마입니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상처의 공명 — 구천과 생강이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제가 을 보다가 처음으로 화면을 멈춘 건 구천이 생강 앞에서 처음으로 무너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구천은 어린 시절 익사 직전에 살아 돌아온 뒤, 잠들면 귀매(鬼魅)의 세계를 오가며 귀신을 직접 베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귀매란 이승과 저승 사이 ..
새로운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연달아 터질 때, 그냥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일을 처음 바꿨을 때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을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텨내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 소비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수리남이라는 배경, 왜 이 이야기가 가능했나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입니다. 주인공 강인구는 생계를 위해 남미 수리남까지 홍어를 팔러 갔다가, 마약 조직과 국가정보원 작전 사이에 끼어버립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배경이 나온 게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수리남은 1990년대부터 남미 마약 운송의 주요 경유지로 알려져 왔습니다. 지리적으로 남미 북동부에 위치해..
나쁜 학생 혼내주는 '사이다물'이겠거니 싶었는데요. 그런데 보다 보니 제가 교육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말들, "학생을 이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그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 단순한 응징극이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시스템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교권 판타지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의 설정은 분명히 비현실적입니다. 국가가 '교권보호국(이하 교권국)'이라는 특수 기관을 만들어 감독관을 학교에 파견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여기서 교권보호국이란, 기존 법과 제도가 학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 최강석이 설립한 기관으로, 감독관에게 교육 방식의 제한을 최소화한 특별 권한을 부여합니다. 쉽게 말해, 말로 안 통하는 학생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멈춰 세울 수 있는 권한..
가장 무서운 악마는 어디에 있을까요. 영화 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크린 속 괴물보다 훨씬 섬뜩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분노를 신의 뜻이라 믿는 한 인간의 얼굴, 그리고 그게 완전히 낯설지 않다는 느낌.빗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 비극의 배경영화의 발단은 어이없을 만큼 단순합니다. 천장에서 새어 나온 빗물이 사진 위에 번지면서 우연히 악마처럼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개척 교회 목사 성민찬은 이 형상을 주님의 계시로 오인하고, 아동 학대 전과자 권양대를 추격해 밀쳐버립니다.여기서 핵심 심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이를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집까지 압류 위기에 처한 한 여성이 정원사 본능 하나로 마피아와 협상 테이블에 앉습니다. 영화 를 보며 제가 먼저 든 생각은 "이건 내 이야기랑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계획이 통째로 무너졌을 때 사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저도 직접 겪어봤기 때문입니다.위기가 꺼낸 능력 — 궁지에 몰린 그레이스의 선택영화는 남편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인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어두운 추측을 주고받는 그 자리에서, 그레이스는 이미 혼자가 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남긴 막대한 채무, 쉽게 말해 갚을 길 없는 빚이 집 전체를 삼킬 위기로 번집니다.저도 비슷한 감각을 알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처음..
유령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가 가족 이야기와 이렇게 깊이 맞닿을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영화 는 1944년 전쟁 중 할머니 댁에 맡겨진 소년 톨리가 그린노우 저택에서 100년 전 선조들의 흔적을 마주하며 가문의 진실을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가까운 가족과 서툰 방식으로 감정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 영화가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가족의 사랑 — 어색함 뒤에 숨겨진 마음가족 사이에 오해가 쌓이면, 그 거리를 좁히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저도 한동안 그 답을 몰랐습니다.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어머니와 떨어지게 된 톨리는 오랜 갈등으로 멀어진 할머니 올드노우와 함께 그린노우 저택에 머물게 됩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저택 안에서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