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반 꼴찌였던 아이가 세계적인 소아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영화 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단정했던 제 모습이 스크린 속 어린 벤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잠재력을 믿어준 사람 한 명의 힘새로운 분야를 시작할 때마다 저는 꼭 한 번씩 벽에 부딪혔습니다. 주변 사람들보다 이해가 느리다 싶으면 '나는 이 분야에 맞지 않나 보다'라고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 가능성을 닫아버린 셈이었습니다.벤 카슨의 어린 시절도 비슷했습니다. 성적은 바닥이었고 자존감은 더 낮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독서를 시키면서 단 한 번도 "네가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왜 바로 말하지 못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 질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을 보고 나서, 그 질문 자체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침묵은 나약함이 아니라, 침묵하게 만드는 구조가 먼저 있었습니다.조직적 침묵이 권력형 성범죄를 키운다일반적으로 권력형 성범죄는 한 사람의 비정상적인 일탈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전혀 달랐습니다. 로저 에일스의 행동이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유독 대담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핵심 개념이 바로 2차 가해(secondary victimization)입니다. 2..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어디까지 밀려날 수 있을까요. 영화 는 1960년대 런던 다이아몬드 회사를 배경으로 그 질문을 아주 조용하고 치밀하게 건드립니다. 직접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로라의 선택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유리천장 앞에서 멈춰 선 여성 매니저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눈에 담은 건 로라의 표정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공급 회사인 런던 다이아몬드에서 유일한 여성 매니저로 일하는 그녀는, 어떤 남성 동료보다도 업무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승진 자리가 날 때마다 그녀의 이름은 언제나 후보 명단에서 빠져 있었습니다.여기서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개념을 짚..
까칠하고 고집스러운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는 표면만 보면 투덜이 노인의 변화를 그린 가벼운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실감과 고립, 그리고 공동체가 사람을 어떻게 살게 하는지를 꽤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엔 오토가 그냥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제 안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발견했습니다.까칠함의 정체 — 상실감이 만든 방어기제오토가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하는 이웃에게 벌컥 화를 낸다거나, 주차 구역을 조금만 침범해도 따지고 드는 장면을 보면서 처음엔 솔직히 피곤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단순히 성격 탓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어기..
이 영화를 그냥 킹스맨 감독의 가벼운 스파이 코미디 정도로 생각하고 봤는데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너무 재밌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 엘리가 쓴 소설 속 이야기인 줄 알았던 장면들이, 사실은 그녀 자신이 잊고 있던 실제 기억이었다는 반전 구조가 생각보다 훨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소설과 기억의 경계가 무너질 때영화 은 이중 서사 구조(dual narrative structure)를 활용합니다. 여기서 이중 서사 구조란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진실로 합쳐지는 방식을 뜻합니다. 처음 30분은 그냥 유쾌한 첩보 소설 속 장면처럼 보이는데, 엘리가 현실에서 스파이 에이든을 만나면서 소설 속 주인공 아가일의 이미지와 겹쳐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
드라마를 보다가 "이 사람이 왜 저러지?" 싶었던 장면이 나중에 전부 연결될 때의 그 느낌, 저는 그게 좋아서 장르물을 즐겨 봅니다. 를 처음 틀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골목을 맴도는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 맥락 없이 던져지는 장면들. 솔직히 3화까지는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파이널 에피소드를 끝까지 보고 나서야 그 불친절함이 설계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인물별 결말과 쿠키 영상 해석을 정리해봤습니다.인물 각색: 원작과 드라마, 실제로 얼마나 다른가일반적으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원작을 그대로 옮겼다"는 평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제가 를 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캐릭터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원작의 뼈대는 유지하되 드라마만의 살을 꽤 많이 붙여놨습니다.가장 눈에 띄었던 건 ..
새로운 환경에 처음 들어갔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규칙을 저만 모르는 것 같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 를 보며 그 감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25년간 감금된 채 자란 제임스가 세상 밖으로 나와 적응하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트라우마 회복을 복수나 눈물로 그리지 않고 창작과 관계 회복으로 풀어냅니다. 어두운 소재를 이렇게 따뜻하게 다룬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감금 트라우마, 제임스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제임스는 태어난 직후 납치되어 25년을 가짜 부모 밑에서 살았습니다. 가짜 부모는 바깥세상이 독성 공기로 가득 차 있다고 가르쳤고, 제임스는 그 말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의해 구출된 뒤에야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됩니다.이처..
영화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눈(眼)을 소재로 한 SF 로맨스라길래 감각적인 영상미 위주의 작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는 홍채라는 신체 정보가 전생과 현생을 잇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설정으로, 과학과 믿음이라는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숫자와 근거에 기대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이안이라는 캐릭터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불편할 만큼 익숙했습니다.가치관 차이가 만들어낸 사랑, 그리고 균열주인공 이안은 눈의 기원을 연구하는 박사입니다. 그의 연구 핵심은 홍채(Iris) — 쉽게 말해 눈동자의 색과 패턴을 결정하는 조직인데, 세상 모든 사람의 홍채가 완전히 다른 고유한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이 홍채 패턴은 지문보다 정교한 생체 인식 수단으로, 실제로 현대 보안 시스템에..
저는 이 작품을 단순한 한국형 스릴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제가 먼저 든 생각은 "저 지민의 마음, 제가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마주쳤을 때 느끼는 그 복잡한 감정, 동경이 실망으로 바뀌는 그 순간의 불편함. 는 그 감정의 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영화입니다.망상심리가 설계한 반전구조, 얼마나 치밀한가의 가장 큰 장치는 비신뢰 서술자(Unreliable Narrator) 구조입니다. 여기서 비신뢰 서술자란,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시점 인물이 실제로는 왜곡되거나 허구화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관객이 '사실'이라고 믿으며 보던 장면들이, 사실은 한 인물의 망상과 투영 속에서 재구성된 ..
술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요. 영화 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18세 소녀 다슬이 막걸리를 '약'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슬의 집착이 낯설기보다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버티기 위해 무언가를 붙잡아야 했던 제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막걸리가 약이 된다면, 그게 집착일까요 믿음일까요다슬은 학교에 화장품 공병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 안에는 막걸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적도 좋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가족 몰래 술을 챙겨 다니는 이 장면이 영화의 첫 번째 균열입니다.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심리적 의존(Psychological Dependence)입니다. 심리적 의존이란 특정 물질이나 행동이 없으면 불안이나 공허감이 심해져 일상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