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가 살인을 계획한 뒤 오히려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영화 을 처음 봤을 때 이 설정이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고, 그때 에이브가 느낀 공허함이 전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살인 계획이 활력이 된다는 설정, 팩트로 따져봤습니다영화 속 에이브 루카스 교수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지쳐 보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선 우울증 소문이 돌고, 절친의 죽음 이후 무기력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강의에서 철학의 많은 부분이 "언어적 자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언어적 자위란, 현실을 바꾸지 못하면서 개념과 논리만 끝없이 반복하는 지적 유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대사 하나로 그가 얼마나 ..
믿었던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의심했던 사람이 사실을 말하는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 을 보면서 그 감각이 그대로 되살아났습니다. 전라남도 곡성의 한 마을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주인공 종구는 딸을 살리기 위해 서로 상반된 말을 쏟아내는 존재들 사이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닌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느꼈습니다.스토리 분석 — 저주가 퍼지는 방식과 구조영화는 곡성 마을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살인 사건들로 문을 엽니다. 가해자들은 한결같이 온몸에 발진과 두드러기가 퍼진 채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경찰 종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집 안에는 말라비틀어진 금어초와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제단 같은 구조물이 남겨져 있었습니다.여기서 '사령(死靈)'이라는 ..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또 다른 판타지 가족 영화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 은 상실과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에게 낯선 남자 잭이 찾아오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마법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 보는 내내 제 경험과 겹쳐지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결단력 —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영화에서 잭이 톰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결단력(Determination)'입니다. 여기서 결단력이란 단순히 의지력이 강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한 발을 내딛는 행동 지향적 태도, 쉽게 말해 '일단 해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잭은 야구 실력이 형편없어 친구들에게 놀..
전문가가 경고를 외쳤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다음번에 또 경고할 수 있을까요. 넷플릭스 영화 를 보다가 제가 오래전에 직장에서 겪었던 일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작은 이상 신호를 눈치채고도 "괜히 예민하게 구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입을 다물었던 그 순간이요. 이 영화는 화산과 쓰나미를 다루지만, 저한테는 그 재난보다 훨씬 가까운 이야기로 읽혔습니다.전문가의 침묵, 데이터보다 무서운 건 안일한 판단이었습니다영화에서 지질학자 알바로가 동굴 내부에서 처음 이상 징후를 포착했을 때, 저는 그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박쥐 수백 마리가 집단 폐사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알바로가 균열을 보고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가 실패한 걸까요? 영화 을 보면서 저는 그 질문 앞에 한참 멈춰 섰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여자와, 연민과 호기심으로 다가온 남자의 이야기인데 — 끝이 아름답지 않은데도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운명적 만남이라고 부르기엔 솔직히 좀 복잡했습니다일반적으로 로맨스 영화의 첫 만남은 운명처럼 포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도 표면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츠네오가 동네 소문 속 수상한 유모차를 끌어주며 조제와 처음 마주치는 장면은, 보기에 따라 충분히 운명적입니다.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츠네오가 조제에게 다가간 데에는 연민(憐憫), 즉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먼저 깔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연민이란 상대의 고통에 공감..
웃으려고 틀었던 영화인데, 보다 보니 제가 친구나 가족과 부딪혔던 장면들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 은 이혼 직전의 부부가 교통사고로 동시에 기억을 잃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강하늘, 정소민 두 배우의 코믹 케미가 핵심이지만, 그 안에 담긴 부부 갈등의 구조는 생각보다 꽤 현실적이었습니다.처음엔 달랐기 때문에 끌렸다 — 갈등 원인일반적으로 성격이 반대인 사람끼리 잘 맞는다고들 하는데, 제 경험상 그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처음에는 나와 다른 면이 신선하게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가 마찰의 근원이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영화 속 정열과 나라도 딱 그 구조입니다. 클럽에서 처음 만났을 때, 강남 회사원 스타일의 알뜰한 고시생 정열과 소문난 주당에 자유분방한 나라는 서로에게 없는 ..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뭘까요? 저는 당연히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을 보고 나서 그 확신이 흔들렸습니다. 스크린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낯설지 않았거든요. 생사가 걸린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들, 비용을 계산하는 정치인들 — 그리고 제가 직접 겪어봤던 그 답답한 순간들이 겹쳐 보였습니다.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달려온 건 구조대가 아니었다터널이 무너지고 정수가 갇혔을 때, 제일 먼저 그에게 연락해 온 건 구조 신호를 받은 소방대가 아니었습니다. 기자였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 산소도 물도 부족한 사람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이 그거였습니다.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업무 중 오류가 터졌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원했던 건 문제를 빨리 수습하는 것이었는데, 주..
낯선 환경에 던져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뭔지 아십니까? 저는 한때 새 업무 시스템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 의 빅터 나보르스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9개월 동안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모국 크라코지아의 쿠데타로 여권 효력을 잃고, 입국도 귀국도 불가능한 채 공항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공항 생존기 — 규정 앞에서 살아남는 법빅터가 처음 JFK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입국 심사관과의 소통이 완전히 막힌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고국에서 쿠데타(coup d'état)가 발생했습니다. 쿠데타란 기존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는 행위로, 이로 인해 크라코지아 국적 여권 자체가 국제법상 효력을 잃게 됩니다. 빅..
코미디 역사 영화라길래 가볍게 웃고 끝날 줄 알았는데, 영화 를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채우는 것"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방탕한 세자와 충녕의 대비가 단순한 웃음 이상의 울림을 남깁니다.직함과 자질은 왜 늘 함께 오지 않을까제가 처음 새로운 업무를 맡았을 때, 솔직히 주변 사람들의 직급이나 경력을 먼저 봤습니다. '저분은 나보다 경험이 많으니 당연히 더 잘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위축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일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높은 직책에 있으면서도 책임은 교묘히 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기 몫 이상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영화 속 세자 이각이 딱 그런 케이스입니다. ..
가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2005년 영국 블랙코미디 영화 은 이 불편한 질문을 아주 유쾌한 얼굴로 던집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웃겼는데 찜찜했고, 찜찜한데 또 공감됐습니다. 그 기묘한 감각이 뭔지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가정부 그레이스가 불러온 변화, 정말 좋은 일이었을까요목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보면, 보통은 공동체를 돌보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역할이라는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월터는 정작 자기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아내 글로리아는 골프 강사 랜스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고, 아들 피티는 매일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도요.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서사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 바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