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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뭘까요? 저는 당연히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터널>을 보고 나서 그 확신이 흔들렸습니다. 스크린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낯설지 않았거든요. 생사가 걸린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들, 비용을 계산하는 정치인들 — 그리고 제가 직접 겪어봤던 그 답답한 순간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달려온 건 구조대가 아니었다
터널이 무너지고 정수가 갇혔을 때, 제일 먼저 그에게 연락해 온 건 구조 신호를 받은 소방대가 아니었습니다. 기자였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 산소도 물도 부족한 사람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이 그거였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업무 중 오류가 터졌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원했던 건 문제를 빨리 수습하는 것이었는데, 주변 반응은 달랐습니다. "누가 잘못한 거야?", "왜 미리 안 막았어?" — 현장은 불타고 있는데 방화범을 찾는 분위기랄까요. 그때 느낀 건, 책임을 따지는 일이 나쁜 게 아니라 타이밍이 문제라는 겁니다.
영화 속 언론의 행태(行態)는 단순한 과장이 아닙니다. 언론 행태란 재난 상황에서 미디어가 취재와 보도를 진행하는 방식 전반을 가리키는데, 이 영화에서 기자들은 생방송 실적을 위해 구조 현장을 무대로 소비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장 대경이 "지금 카메라가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제가 직접 봤을 때 왜인지 모르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재난 현장에서의 미디어 윤리는 오랫동안 논의돼온 문제입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재난 보도 준칙을 통해 피해자 동의 없는 인터뷰와 자극적 영상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 준칙이 얼마나 지켜지는지는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생사가 오가는 순간, 가장 먼저 걸려온 전화는 기자였다
- 구조 현장은 생방송 실적을 위한 무대로 소비됐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난 보도 준칙은 현실에서 쉽게 무너진다
설계도와 현장이 달랐다 — 부실시공이 만든 두 번째 재앙
17일. 구조대가 수직 굴착(垂直掘鑿)을 이어간 시간입니다. 수직 굴착이란 지하에 갇힌 사람이 있는 위치 바로 위에서 지면을 수직으로 파내려 가는 구조 공법으로, 2010년 칠레 광부 매몰 사고 때 전 세계 이목을 끌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대경은 드론 투입이 전파 간섭으로 실패하자 직접 무너진 터널 안으로 들어가 정수의 위치를 확인하고, 설계도를 근거로 굴착 지점을 정합니다.
그런데 17일 만에 굴착이 완료된 지점에 정수가 없었습니다. 완공된 터널이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겁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실제로 몸이 굳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문서에 적힌 내용을 믿고 작업을 진행했다가 실제 구조가 달라 전부 다시 해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의 허탈함이 이 장면과 겹쳐서, 극 중 구조대원들의 탈력감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부실시공(不實施工)이란 설계 기준이나 시방서를 따르지 않고 공사를 마무리한 것을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것은 단순한 공사 하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변수가 됩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건설 현장의 설계·시공 불일치로 인한 하자 분쟁은 매년 수천 건에 달합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이 숫자가 재난 현장과 맞닥뜨렸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영화는 아주 잔인할 만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표심과 생명 — 정치적 대응이 구조 현장을 겉돌 때
영화 속 장관의 대사는 추상적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려내도록." 현장 상황도, 기술적 판단도 없이 그냥 하는 말. 제가 직접 봤을 때 저 대사는 웃기면서도 서늘했습니다. 저게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구조가 장기화되자 여론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비용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구조를 계속해야 하느냐는 논의가 정치적 언어로 포장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구조 비용 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입니다. 이는 투입되는 자원과 기대되는 결과를 수치로 비교하는 방식인데, 문제는 이 방식이 사람의 생명을 계산 항목으로 집어넣을 때 발생합니다.
원작 소설은 이 지점에서 훨씬 냉혹합니다. 구조가 길어지자 여론은 정수와 그의 아내를 향해 돌아서고, 결국 아내가 방송에 나와 구조 중단을 발표하는 상황까지 몰립니다. 절망한 정수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시신이 발견된 뒤 여론은 태도를 바꿔 이번엔 아내를 가해자로 지목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락하는 이 구조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소설을 읽는 내내 숨이 막혔습니다.
반면 영화는 대경이 끝까지 정수를 포기하지 않는 해피엔딩을 선택합니다.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긴 절망 끝에 관객에게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는 점에서 저는 이 결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건 아쉬웠습니다.
대경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 — 구조의 본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하정우도 오달수도 아니었습니다. 구조대장 대경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태도였습니다. 그는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든, 장관이 뭐라 하든, 카메라가 어디를 향하든 관계없이 단 하나의 원칙을 붙들고 있습니다. 지금 저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구조 우선순위(Triage, 트리아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재난 현장에서 제한된 자원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환자를 분류하는 의료·구조 원칙인데, 대경의 행동은 이 원칙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숫자가 아니라 '이 한 사람'에 집중하는 것. 효율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고집이 구조라는 행위의 가장 본질적인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문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판단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주변에서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결국 문제를 풀어냅니다. 대경이 그랬고, 제가 경험했던 몇몇 순간도 그랬습니다.
영화 <터널>이 궁극적으로 비판하는 건 특정 기자나 정치인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한 사람을 편의에 따라 포기하는 사회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대경이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내가 대경처럼 행동한 적이 있었나'를 돌아봤습니다. 쉽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터널, 원작 소설이랑 결말이 다르다고요?
A. 맞습니다. 영화는 대경의 활약으로 정수가 살아서 구조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반면 원작 소설에서는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여론이 돌아서고, 아내가 구조 중단을 발표하자 절망한 정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여론은 다시 아내를 가해자로 지목하며, 피해자 가족까지 파멸로 이끄는 훨씬 잔인한 결말입니다. 영화가 위로를 택했다면, 소설은 현실의 민낯을 선택한 셈입니다.
Q. 터널 붕괴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인재라고요? 영화에서 어떻게 나와요?
A. 영화에서 17일간의 수직 굴착 끝에 도달한 지점에 정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그 원인이 터널이 설계도면과 다르게 부실 시공된 것이었습니다. 설계와 현실이 달랐기 때문에 구조 작전 자체가 처음부터 틀린 방향으로 진행된 겁니다.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관리 소홀과 부실 공사가 만들어낸 인재(人災)임을 영화는 이 한 장면으로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Q. 재난 현장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기준이 있나요?
A.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재난 보도 준칙을 통해 피해자 동의 없는 인터뷰 자제, 자극적 영상 사용 금지, 구조 활동 방해 금지 등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준칙이 법적 강제력을 갖지는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지는지는 개별 언론사와 기자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행태가 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재난 보도 사례들을 찾아보면 그렇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Q. 터널 영화, 재난 영화로서 완성도는 어떤가요?
A. 재난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은 충분합니다. 하정우가 터널 안에 홀로 갇혀버리는 전반부부터 구조 작전이 진행되는 중반까지 지루한 구간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일부 언론인·정치인 캐릭터가 지나치게 희화화된 점, 그리고 해피엔딩이 현실성과 타협한 느낌을 주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을 오락적 형식 안에 잘 녹여낸 작품이라는 평가는 충분히 납득됩니다.
결론
영화 <터널>을 보고 난 뒤 제가 가장 오래 남아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저 상황에서 대경이었을까, 아니면 카메라를 든 기자였을까.' 생명보다 시청률을, 구조보다 표심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에 더 불편했습니다.
급한 문제 앞에서 책임 소재부터 따지는 분위기, 설계도를 맹신하다 현장과 어긋나는 실수, 여론이 바뀌자 피해자를 가해자로 돌려세우는 잔인함 — 이 영화가 비판하는 것들이 2016년 스크린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제 경험을 통해서도 느꼈습니다. 재난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위기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궁금한 분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