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 번쯤은 고민했습니다. 내가 배운 것들이 정해진 길 위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건지. 영화 《홀랜드 오퍼스》를 보다가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작곡가를 꿈꾸던 한 사람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교직이 결국 그의 삶 전체를 뒤바꾸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감동 영화라고 보기엔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꽤 깊이 건드립니다.교육철학 — "설명을 바꾸는 사람"이 교사다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방법을 쓰는 건 공평한 교육이 아니다." 처음엔 그게 교과서 속 원칙처럼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영화 속 글렌 홀랜드가 박자를 전혀 잡지 못하는 학생에게 접근..
영화 《올빼미》를 보기 전까지는 낮에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이 어떻게 궁중 암투의 중심에 설 수 있는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약점이 오히려 아무도 보지 못한 진실을 목격하는 무기가 되는 이야기였고, 그 설정이 제가 직접 경험한 직장 생활의 어느 순간과 겹쳐 보였습니다.약점과 강점 — 한 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영화의 주인공 경수는 주맹증(晝盲症)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맹증이란 밝은 낮에는 사물을 거의 식별하지 못하지만, 어두운 환경에서는 오히려 어느 정도 시력이 회복되는 시각 이상 증상입니다. 쉽게 말해 낮과 밤이 뒤바뀐 눈을 가진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으면 능력 전체가 낮게 평가받는다고 알려..
일이 잘 안 풀릴 때, 저도 모르게 "장소가 별로야", "타이밍이 나빴어"라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이 있습니다. 영화 《명당》을 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편리한 자기 위로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그늘 속에서 풍수지리를 둘러싼 욕망과 복수가 얽히는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풍수지리가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나영화의 배경은 순조 연간, 효명세자가 의문사하면서 시작됩니다. 세자의 묏자리를 두고 지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데, 당시 실력자 김 대감은 결국 흉지에 세자를 묻히게 만듭니다. 이에 반대했던 박재상은 보복으로 가족까지 잃고 13년을 떠돌다 다시 무대에 등장합니다.여기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풍수지리(風水地理)입니다. 풍수지리란 땅의 생..
솔직히 저는 《설국열차》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액션 블록버스터려니 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싸운다는 설정이 좀 특이하다 싶었을 뿐이고요. 그런데 보다 보니 이건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기차라는 밀폐된 공간에 자본주의 계급 구조를 통째로 압축해 넣은 작품이었고, 제가 직장에서 겪어온 불합리한 경험들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기차 안의 계급구조, 사실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됐나《설국열차》의 배경은 단순한 SF 설정이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살포한 냉각제 CW-7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며 지구 전체를 빙하기로 몰아넣었고, 윌포드가 설계한 무한동력 열차만이 유일한 생존 공간이 됩니다. 여기서 '무한동력(perpetual motion)'이란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영구적으로 작..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꽤 자주 썼습니다. 일이 뜻대로 안 풀렸을 때, 하기 싫은 것을 그냥 받아들였을 때.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나서, 그 말이 얼마나 편리한 도피처였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해고 이후 무너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습니다.해고가 무너뜨린 것은 직장이 아니었습니다영화의 주인공 유만수는 안정된 직장, 좋은 차, 아내와 자녀, 반려견까지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국계 자본에 인수된 회사가 정리 해고를 단행하면서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흔들립니다. 더 기가 막힌 건, 해고 전날 회사가 직원들에게 장어를 선물했다는 사실입니다. 위로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상 작별 인사였던 셈입니다.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영화 《마녀》를 처음 볼 때 자윤이 그냥 쫓기는 피해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후반부 반전이 터지는 순간, 앞서 봤던 장면 전부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군요. 약하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 가장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구조, 저도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더 날카롭게 꽂혔습니다. 이 글은 자윤의 계획적 노출 전략부터 정체성 문제, 그리고 가족의 의미까지 세 갈래로 뜯어봅니다.계획적 노출 — 약해 보이는 것이 전략일 때자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능력을 드러내는 장면, 처음엔 그냥 치료비가 필요한 딸의 선택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결말에서 밝혀진 사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자신을 노출시키면 닥터 백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계산 아래, 자윤은 처음부터 전 과정을 연출하고 있었던 ..
처음 만난 사람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해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매일 다른 얼굴로 깨어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저 얘기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첫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직접 겪어보니영화의 주인공 우진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낯선 노인의 모습으로 바뀐 것을 발견합니다. 12년 전부터 시작된 일로, 매일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됩니다. 어머니만이 그를 알아봅니다. 어떤 얼굴이든, 단번에.저는 이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표정이 굳어 있거나 말수가 적으면 거리를 두게 되더라고요..
영웅은 처음부터 영웅이었을까요? 영화 《승리호》를 보기 전까지 저는 막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생계를 위해 우주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고, 처음에는 아이 하나를 팔아넘길 궁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날 때 저는 꽤 오래 여운을 붙잡고 있었습니다.우주 청소부의 세계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습니다영화의 배경은 2092년입니다. 지구 환경이 완전히 무너졌고, 경제력을 갖춘 일부 계층만 UTS(United Terra Solution)라는 민간 우주 기업이 개발한 거주 위성으로 이주합니다. 여기서 UTS란 지구 밖 위성 거주지를 운영하며 이주민을 선별·관리하는 거대 사기업으로, 사실상 정부 역할을 대신하는 초국가적 권력..
취업 준비가 길어지던 시절, 저는 제가 배워온 것들이 정말 쓸모 있는지 진지하게 의심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엑시트》를 보고 묘하게 마음이 풀렸습니다. 무기력하게 공원 철봉이나 잡던 백수 청년이 재난 상황에서 가족을 구하는 이 영화는, 지금 당장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에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걸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취업 실패한 클라이밍 에이스, 재난 앞에서 달라지다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열심히 준비했는데, 주변 눈치가 신경 쓰여서 자꾸만 위축되는 느낌. 저는 그게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영화 속 용남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대학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에이스로 활약했고,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졸업 후 취업에 번번이 실패합니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동네 공원에서 철봉을 잡고 있는 그는..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그냥 유쾌한 버디 코미디로만 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 두 경찰대생이 절차를 이유로 외면당하는 장면에서, 누군가 분명히 위험한 상황인데 담당자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일이 멈춰버리는 느낌을 받으며 굉장히 몰두해서 영화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경찰》은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영화였습니다.경찰이 움직이지 않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영화 초반, 두 주인공 기준과 희열은 고등학생이 납치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들이 즉각 경찰에 신고했을 때 돌아온 답은 "절차상 지금 바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인지수사(認知搜査)입니다. 인지수사란 피해자 신고 없이 수사기관이 스스로 범죄 사실을 파악해 수사를 개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