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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꽤 자주 썼습니다. 일이 뜻대로 안 풀렸을 때, 하기 싫은 것을 그냥 받아들였을 때.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나서, 그 말이 얼마나 편리한 도피처였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해고 이후 무너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습니다.
해고가 무너뜨린 것은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유만수는 안정된 직장, 좋은 차, 아내와 자녀, 반려견까지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국계 자본에 인수된 회사가 정리 해고를 단행하면서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흔들립니다. 더 기가 막힌 건, 해고 전날 회사가 직원들에게 장어를 선물했다는 사실입니다. 위로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상 작별 인사였던 셈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새 직장에 적응하던 시절, 저도 비슷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경력이 있어도 새 환경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평가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게 사실 별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직장을 잃거나 흔들릴 때 무너지는 건 단순히 수입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는 걸, 만수를 보며 다시 확인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직업 정체성(Occupational Identity)이라고 부릅니다. 직업 정체성이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심리적 기제를 말합니다. 만수가 집을 팔지 못하고, 업종 전환을 거부하고, 결국 폭력의 길로 접어든 것도 이 정체성이 무너지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힙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실직은 단순한 경제적 충격을 넘어 우울, 자존감 하락,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복합적 위기로 작용합니다.
"싫은데요"를 못 하는 사람이 택한 합리화
만수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가장 후회하는 것은 "싫은데요"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이 제게는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저도 업무 지시가 부담스럽거나 범위가 모호할 때,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일단 받아들이고 나중에 혼자 끙끙 앓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믿었는데, 결국 쌓인 불만이 일 자체에 대한 의욕을 서서히 갉아먹었습니다.
만수도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을 쌓아 두다가, 그것이 외부로 폭발합니다. 그런데 그 폭발의 방향이 자기 자신이나 구조가 아닌, 같은 처지의 다른 구직자들을 향합니다. 알코올 의존 상태의 구범모, 제지업계 경력을 가지고도 구두 매장 점원으로 일하는 고시조, 그리고 잘 나가는 반장 최선출. 이들은 만수와 수십 년을 같은 업계에서 보낸 사람들입니다. 만수는 이들을 제거 대상으로 삼으면서 '어쩔 수가 없다'라고 반복합니다.
여기서 영화가 날카롭게 건드리는 개념이 바로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입니다. 도덕적 이탈이란 자신의 비윤리적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지적 메커니즘을 가리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그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에서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만수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를 해고한 미국 본사도, 나중에 그를 고용하는 새 고용주도 동일한 말을 반복합니다. 제목 자체가 이 합리화의 구조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습니다.
이병헌과 손예진, 같은 위기를 다르게 사는 두 사람
이병헌 배우가 만수를 연기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행위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동기는 이해가 갑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연기는 드뭅니다. 만수가 최선출과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만취 연기는, 단순히 취한 척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린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것처럼 읽혔습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그리는 건 배우 본인의 내공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반면 손예진이 연기한 아내 미리는 영화의 정서적 중심입니다. 싱글맘으로 혼자 새 출발을 해본 경험이 있는 그녀는, 남편에게 "집을 팔고 전세로 가면 된다"고 현실적인 방안을 냉정하게 제시합니다. 처음엔 그 냉정함이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보다 보면 오히려 미리 쪽이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달라진 현실을 직시하고 먼저 방향을 바꾸는 것, 저도 익숙한 경력과 조건을 내려놓고 다른 분야를 배워나가면서 그게 얼마나 어렵고 또 필요한 일인지 체감했습니다.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이 연기한 조연들도 짧은 등장 안에서 각자의 기묘한 면모를 남깁니다. 이들이 만수의 표적이 되는 아이러니는, 시스템의 피해자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구조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섭니다.
- 이병헌: 공감 불가한 행위와 이해 가능한 동기를 동시에 구현하는 연기
- 손예진: 현실을 직시하고 먼저 방향을 바꾸는 미리 역할로 영화의 도덕적 무게중심을 잡음
- 박희순·이성민·차승원: 만수와 동일한 피해자 구조 안에서 표적이 되는 아이러니를 담은 조연들
도끼의 이중 기호, 그리고 AI 시대에 더 날카로운 질문
영화에서 '도끼'는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해고를 의미하기도 하고 살인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중 기호(Double Signifier)로 기능합니다. 이중 기호란 하나의 이미지나 단어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시하는 기호학적 장치를 말합니다. 도끼로 잘린다는 표현 자체가 영어권에서 해고를 뜻하는 관용어이기도 해서, 박찬욱 감독은 이 언어적 중의성을 시각적으로 끌어올린 셈입니다. 이 영화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더 엑셀(The Axe)』을 현대 한국 사회로 옮긴 작품인데, 원작의 이 기호가 한국 정서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더 서늘한 건 이 영화가 개봉된 시점의 맥락입니다. 영화 속 만수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만수 세대는 제지 산업에서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사회가 필요할 때 역할을 주고, 필요가 사라지면 버리는 순환이 반복됩니다. 지금은 그 순환의 속도가 AI와 자동화로 인해 몇 배는 빨라졌습니다. 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약 3억 7500만 명의 노동자가 자동화로 인해 직종을 전환해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만수의 이야기가 특정 개인의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의 예고편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이 질문이었습니다. 직업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누구인가? 한 가지 직업만이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그 일이 흔들릴 때마다 제 안에서 먼저 무너지는 게 있었습니다. 만수처럼 폭력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그 불안 자체는 낯선 감각이 아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쩔 수가 없다 원작 소설이 따로 있나요?
A. 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1997년 발표한 범죄 소설 『더 엑셀(The Axe)』이 원작입니다. 쉽게 말해 해고된 중년 남자가 경쟁자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블랙코미디 구조인데, 박찬욱 감독이 이를 현대 한국 사회의 맥락으로 옮기면서 AI 자동화 공포와 자본 구조 비판을 더했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보면 감독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살렸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Q. 이병헌 만취 연기 장면이 그렇게 화제인 이유가 뭔가요?
A. 최선출과의 음주 장면은 단순히 취한 척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린 감정이 알코올과 함께 터져 나오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가 서서히 무너지는 순간을 어색함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병헌이 왜 이 역할을 맡았는지 납득이 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제가 봤을 때도 그 장면의 밀도가 확실히 달랐습니다.
Q. 만수가 폭력을 선택한 게 사회 탓이라고 볼 수 있나요?
A. 사회 구조가 만수를 벼랑 끝으로 몬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역설적으로 만수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집을 팔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등의 방법이 있었는데도 그는 익숙한 삶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택했습니다. 피해자들 역시 만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Q. 손예진 캐릭터 미리가 그냥 조력자로만 보이지 않던데요?
A. 맞습니다. 미리는 단순히 남편을 내조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싱글맘으로서 혼자 새 출발을 해본 경험이 있고,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현실적인 결단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에서 실제로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방향을 바꾸는 용기를 가진 건 만수가 아니라 미리 쪽이라는 게 저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미리가 있어야 이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유지됩니다.
결론
《어쩔 수가 없다》는 자본주의 구조가 개인을 어떻게 삼키는지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개인이 내리는 선택의 무게를 끝까지 놓지 않는 영화입니다. 만수의 몰락은 안타깝지만, 그 안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미리의 존재가 영화를 단순한 비극으로 끝내지 않게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쓸 때마다 한 번 더 멈추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 아니면 불편한 선택을 피하기 위한 말인지 구분하려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직업이 사라진 뒤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은, 만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