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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 《마녀》를 처음 볼 때 자윤이 그냥 쫓기는 피해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후반부 반전이 터지는 순간, 앞서 봤던 장면 전부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군요. 약하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 가장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구조, 저도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더 날카롭게 꽂혔습니다. 이 글은 자윤의 계획적 노출 전략부터 정체성 문제, 그리고 가족의 의미까지 세 갈래로 뜯어봅니다.
계획적 노출 — 약해 보이는 것이 전략일 때
자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능력을 드러내는 장면, 처음엔 그냥 치료비가 필요한 딸의 선택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결말에서 밝혀진 사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자신을 노출시키면 닥터 백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계산 아래, 자윤은 처음부터 전 과정을 연출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걸 영화 서사 이론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Unreliable Narrator)' 구조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란, 관객이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나중에 그 시선 자체가 편향되거나 의도적으로 구성된 것이었음을 깨닫는 장치입니다. 자윤은 대사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을 통해 관객을 철저하게 오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도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바로 의견을 내세웠다가 혼자 일을 다 떠안거나 실수가 부각될까 봐, 한동안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는 쪽을 택했거든요. 주변에서는 제가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봤겠지만, 저는 그 시간 동안 팀의 의사결정 방식과 권력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윤의 행동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닥터 백이 자윤을 '자신이 만든 실험 결과'로 대하며 통제 불가 능력을 특수 약물로 억제하려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기서 통제 불가 능력이란, 실험 과정에서 설계된 범위를 벗어난 출력, 즉 닥터 백조차 예측하지 못한 수준의 반응을 뜻합니다. 만든 사람도 감당 못 하는 결과물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윤이 시스템의 통제 밖에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 자윤의 오디션 참가는 치료비 목적이 아닌, 닥터 백을 끌어내기 위한 계산된 노출이었습니다
-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 구조 덕분에 관객은 후반부에서 앞선 장면 전체를 재해석하게 됩니다
- 닥터 백의 약물 통제 시도는, 역설적으로 자윤이 이미 설계 범위를 벗어난 존재임을 증명합니다
정체성 — 실험체와 인간 사이에서
닥터 백이 자윤에게 "내가 너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입니다. 자윤을 생명체가 아닌 프로젝트의 산출물로 규정하는 이 시선은, 과학 윤리에서 말하는 도구화(Instrumentalization) 문제와 정확히 겹칩니다. 도구화란, 인간 또는 생명체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철학자 칸트가 말한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원칙을 정반대로 위반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실제로 인체 실험 윤리를 다루는 뉘른베르크 강령(Nuremberg Code)은 1947년 수립 이후 "피험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 어떤 실험도 허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국제 기준으로 못 박았습니다(출처: 미국 보건복지부 벨몬트 보고서). 자윤은 8살 때부터 동의 없이 실험에 노출됐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중대한 인권 침해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자윤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그녀는 자신을 '실험체 자윤'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농장에서 자란 시간, 부모님과의 기억, 친구 명희와의 관계가 그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재료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현실적인 묘사입니다. 저도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처음 맡았을 때 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실제보다 부족하게 평가받는다고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줬던 건 직책이나 스펙이 아니라, 오래 함께한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였습니다. 자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가 더 강한 정체성의 근거가 됩니다.
가족 — 혈연이 아닌 시간과 진심으로 만들어지는 것
자윤이 닥터 백에게서 얻어낸 약물을 자신에게 쓰지 않고, 치매를 앓는 엄마의 치료에 써달라며 아빠에게 넘기는 장면은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밀도 높은 순간입니다. 이 장면 하나로 자윤이 왜 그 복잡한 작전을 혼자 감당했는지가 설명됩니다.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선택적 가족(Chosen Famil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선택적 가족이란,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정서적 유대와 지속적인 돌봄을 통해 형성된 가족 기능적 관계를 뜻합니다. 특히 원가족으로부터 분리되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새롭게 구성하는 공동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자윤에게 농장 부부는 정확히 이 선택적 가족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저는 자윤의 방식에 100% 동의하진 않습니다.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족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혼자 끙끙 앓다가,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이 오히려 더 크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거든요. 비밀이 길어질수록, 나를 믿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자윤도 비슷한 한계를 안고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혼자 감추고 해결하는 방식은, 가까운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믿을 만큼 강하지 않다'는 신호를 주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자윤이 가족을 향해 가졌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는 점, 이것이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장르물 이상으로 만드는 지점입니다. 평범한 척 살아온 10년이 연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윤이 진짜로 살고 싶었던 삶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마녀》 결말에서 자윤이 진짜 원하는 게 뭔가요?
A. 자윤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시한부 판정을 해결할 근본적인 치료법을 찾는 것입니다. 닥터 백에게서 약물을 확보한 뒤, 그 쌍둥이 동생 백종관을 찾아가는 장면이 그 증거입니다. 단순한 복수나 도주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장기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Q. 귀공자는 왜 자윤을 처음에 그냥 두었나요?
A. 귀공자는 자윤을 시험하기 위해 접촉했지만, 자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일단 물러섭니다. 이는 자윤이 이미 자신을 들키지 않는 법을 철저하게 학습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귀공자 입장에서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마지막에 등장하는 '언니'는 누구인가요?
A. 영화는 '언니'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실험체로 추정되며, 속편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인물로 보입니다. 자윤과 어떤 관계인지, 어느 쪽에 속한 존재인지가 다음 이야기의 핵심 질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Q. 닥터 백이 자윤에게 쓴 약물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영화 안에서 약물은 두 가지 기능을 합니다. 하나는 자윤의 통제 불가 능력을 억제하는 진정제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억눌려 있던 과거 기억을 강제로 되살리는 촉매 역할입니다. 닥터 백은 이 약물을 미끼로 자윤을 통제하려 했지만, 자윤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작전을 완성합니다.
결론
《마녀》를 보고 나서 제가 오래 생각했던 건 액션 장면이 아니라 자윤이 왜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 했느냐는 부분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지키는 영리함과, 믿는 사람과 상황을 나누는 용기, 이 두 가지는 서로 반대 방향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 다 필요합니다. 자윤은 전자에서는 완벽했지만 후자에서는 끝까지 혼자였고, 그게 이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한계로 남기도 합니다.
겉이 조용하다고 해서 내면도 단순하다는 법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말이 적고 튀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치밀하게 상황을 읽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고요. 자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저는 첫인상과 능력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속편에서 '언니'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자윤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이유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