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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가 길어지던 시절, 저는 제가 배워온 것들이 정말 쓸모 있는지 진지하게 의심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엑시트》를 보고 묘하게 마음이 풀렸습니다. 무기력하게 공원 철봉이나 잡던 백수 청년이 재난 상황에서 가족을 구하는 이 영화는, 지금 당장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에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걸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취업 실패한 클라이밍 에이스, 재난 앞에서 달라지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열심히 준비했는데, 주변 눈치가 신경 쓰여서 자꾸만 위축되는 느낌. 저는 그게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영화 속 용남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대학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에이스로 활약했고,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졸업 후 취업에 번번이 실패합니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동네 공원에서 철봉을 잡고 있는 그는, 조카 의주에게 "희망 없는 삼촌"으로 불릴 만큼 무기력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칠순 잔치가 열립니다. 잔치 장소인 '구름 정원'에서 용남은 대학 동아리 후배이자 오랜 짝사랑 상대인 의주와 우연히 재회하고, 당황한 나머지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습니다. 이 장면이 웃기면서도 저는 묘하게 공감이 됐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괜히 더 움츠러드는 그 심리 말입니다.
문제는 그 잔치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의문의 독가스가 도심 전체를 뒤덮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독가스 확산이란 특정 화학물질이 공기 중에 퍼지며 광범위한 지역을 오염시키는 현상으로, 밀폐 공간과 저지대일수록 피해가 집중됩니다. 영화는 이 원리를 충실히 반영해, 일행이 옥상처럼 높은 곳으로 피신하려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재난안전포털에서도 화학사고 발생 시 고층·풍상 방향으로 대피하는 것을 권고합니다(출처: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
옥상 문이 잠겨 막막한 상황에서 용남은 기지를 발휘합니다. 클라이밍 기술, 즉 암벽이나 건물 외벽을 손발의 그립과 밸런스만으로 오르는 등반 기술을 활용해 외벽을 타고 옥상에 오릅니다. 제가 직접 클라이밍 센터에서 몇 번 입문 강습을 받아봤는데, 그립 홀드(손으로 잡는 돌기) 하나 잘못 잡으면 순식간에 미끄러집니다. 실제 건물 외벽에서 저 장면을 해내려면 상당한 근력과 루트 파인딩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 등반 중 최적의 이동 경로를 즉석에서 판단하는 능력. 클라이밍에서 가장 중요한 인지 기술 중 하나입니다.
- 그립 강도: 손가락과 전완근의 지구력으로, 꾸준한 단련 없이는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 풍상 방향 대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쪽으로 이동해 가스 오염 지역에서 벗어나는 화학사고 대피 원칙입니다.
용남이 평소 공원에서 매달리며 단련한 악력과 상체 근력이 이 순간 빛을 발하는 설정은, 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클라이밍 훈련의 효과를 생각하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도 과거에 취업 준비 중 배워두었던 그래픽 편집 기술이 전혀 다른 업무 현장에서 갑자기 요긴하게 쓰인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재난 탈출에서 드러난 진짜 능력, 기술보다 책임감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헬기가 겨우 도착했는데, 인원이 너무 많아 용남과 의주만 남겨지는 상황.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옆 건물 학원에 갇힌 학생들을 발견하고, 두 사람이 자신들의 구조 기회를 학생들에게 양보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벅찬 상황에 타인을 위해 기회를 내주는 장면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진짜 역량이란 기술적 숙련도만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서도 타인을 고려할 수 있는 판단력과 책임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쓰레기봉투와 테이프를 활용해 즉석 방독 장비를 만드는 장면입니다. 방독 기능(NBC 방호)이란 핵·생물·화학 위협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영화처럼 완벽한 방독면 없이 임시 차단 장치를 만드는 것은 현실에서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지금 가진 것으로 즉시 행동한다"는 자세는 재난 대응 매뉴얼이 강조하는 핵심 원칙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소방청 국민행동요령에서도 화학사고 시 수건이나 옷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즉시 대피할 것을 안내합니다(출처: 소방청).
의주의 역할도 짚어볼 만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도움받는 인물이 아닙니다. 용남과 대등하게 협력하며 판단을 나누고 위기를 함께 돌파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협업 능력, 즉 극한 상황에서도 서로의 판단을 존중하고 빠르게 조율하는 힘이 실제 위기 대응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업무 현장에서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결정적 탈출 장면에서는 타워 크레인 방향으로 이동하던 중 거리가 너무 멀어 막막해지는 순간, 수십 대의 드론이 나타나 가스를 날리고 길을 열어줍니다. 드론 군집 비행(Swarm Drone)이란 여러 대의 드론이 중앙 제어 없이 서로 통신하며 협조 비행하는 기술로, 재난 현장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구조 지원에 실제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기술입니다. 영화적 과장이 분명 있지만, 이 장면 하나가 공상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기술의 현실 가능성이 충분히 닿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엑시트》는 실제 클라이밍 기술을 제대로 묘사하나요?
A. 영화적 연출이 더해져 있지만, 루트 파인딩과 그립 강도를 활용하는 장면은 실제 클라이밍 원리를 꽤 충실히 따릅니다. 제가 입문 강습을 받아봤을 때도 손가락 힘과 경로 판단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느꼈습니다. 다만 건물 외벽 환경은 실내 암벽장과 달리 변수가 훨씬 많아, 용남의 장면은 숙련자 기준으로도 상당히 도전적인 설정입니다.
Q. 실제 화학가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나요?
A.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화학사고 발생 시 바람이 불어오는 풍상 방향으로 이동하고 가능한 한 고층으로 대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영화 속 용남 일행이 옥상을 목표로 삼는 장면은 이 원칙을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방독면이 없다면 젖은 수건이나 옷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즉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취업 준비생이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A. 저는 이 영화가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도 언젠가 결정적인 능력이 된다"는 메시지를 가장 솔직하게 전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남의 클라이밍처럼, 제 경험상 당시엔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던 디자인·콘텐츠 제작 경험이 전혀 다른 업무에서 예상치 못하게 빛을 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경험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이 영화가 대신 해주는 셈입니다.
Q. 영화 속 드론 군집 비행 장면은 현실에서도 가능한가요?
A. 드론 군집 비행(Swarm Drone)은 이미 재난 탐색·구조 분야에서 실용화 연구가 진행 중인 기술입니다. 여러 대의 드론이 서로 통신하며 협조 비행해 넓은 지역을 동시에 커버할 수 있습니다. 영화처럼 가스를 물리적으로 날려버리는 수준의 규모는 과장이지만, 재난 현장 지원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현실적입니다.
결론
영화 《엑시트》를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사람의 가능성은 지금 가진 직함이나 당장 보이는 성과로 판단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것. 용남이 보여준 건 클라이밍 기술만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태도와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결국엔 연결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지면, 그 경험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저를 구해줬습니다. 아직 자신의 경험이 어디에 쓰일지 모르겠다면,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단단해지는 느낌, 제가 직접 받은 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