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정해준 길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으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전공을 바꾸고, 직종을 넘나들면서 "이게 맞는 건가"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는 바로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1950년대 미국 탄광촌 소년이 로켓 공학자를 꿈꾸며 나아가는 실화인데,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환경이 가능성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였습니다.탄광촌이라는 배경, 그리고 스푸트니크 한 점의 빛1957년,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가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여기서 스푸트니크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냉전(Cold War) — 즉 미국과 소련이 무기 대신 기술과 체제로 경쟁하던 시대 — 의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탄광 ..
냉장고 속에 문명이 통째로 들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넷플릭스 '러브, 데스 + 로봇'의 에피소드 '아이스 에이지'는 그 황당한 전제를 아주 진지하게 밀어붙입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저는 문득 영화 의 네이트가 겹쳐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자리에서 결국 무언가를 꺼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둘 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아이스 에이지가 보여주는 문명의 흥망성쇠냉장고 속에 얼어 있는 매머드 사체를 발견한 부부가 그것을 화분에 묻어주는 장면, 솔직히 처음엔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면이 전환되고 나서야 이 에피소드가 단순한 기묘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아이스 에이지'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s)' 시즌 1..
처음 해보는 일을 제안받았을 때, 저는 기대보다 걱정이 훨씬 앞섰습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죠. 영화 를 보면서 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평범한 바텐더 네이트가 마젤란의 황금을 좇는 모험에 뛰어드는 이야기인데, 막상 부딪혀보니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제 경험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모험의 시작,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영화는 네이트가 비행기 화물칸에서 공중으로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서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저는 그 구조 자체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바에서 소매치기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청년이 어느 날 빅터 설리번(설리)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마젤란 탐험대가 남긴 황금의 단서를 좇기로 결심하는 과정이 ..
"거짓으로라도 문을 열면 나중에 실력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영화 은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를 울리 게로머트라는 인물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허상 위에 세워진 야망이 결국 자신과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허상으로 쌓은 야망 — 울 리의 사회공학영화는 미국 워싱턴 D.C. 조지타운에서 아내 엘사의 사망을 발견한 울리 게로머트의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울 리가 경찰 조사에서 "담배 때문에 산책을 나갔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너무 매끄러워서였습니다. 제가 직접 그 흐름을 따라가며 느낀 건, 이 사람은..
뇌 손상으로 8년의 기억을 잃은 천재 내과의가 낯선 병원으로 복귀합니다. 저도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기억을 잃으면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D.O.C 닥터 라슨은 그 질문에 꽤 진지하게 답을 내놓는 드라마입니다.기억 상실이 드러낸 8년의 공백의문의 교통사고로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은 닥터 라슨은 최근 8년간의 기억을 통째로 잃습니다. 의학 용어로 이를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사고 이전에 형성된 장기 기억이 손상되는 현상으로, 뇌의 해마(Hippocampus)와 전두엽 회로가 손상될 때 주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어제 일을 잊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쌓아온 관계와 감정이 한꺼번에 지워지..
'범인을 못 잡는 영화'가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을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2007)은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통쾌한 해결 대신 '답 없음'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들이밉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영화가 던진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습니다.집착의 심리 — 답을 찾으려다 일상을 잃는다영화에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사보 편집자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조디악 사건에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갑니다. 처음엔 암호문 해독에 관심을 보이던 그가, 어느 순간 가족과의 저녁 식사보다 사건 파일이 더 중요해지는 인물로 변해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묘하게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제 경험상 이 감각은 꽤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
예의 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이탈리아 휴가에서 우연히 만난 두 가족이 주말을 함께 보내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낯선 범죄자의 공포보다 불편함을 외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가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위험 신호를 지우는 사회적 순응의 메커니즘영화 속 벤과 루이스 가족은 이탈리아 휴가 중 패디 부부를 만납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첫 만남, 잃어버린 인형을 함께 찾아준 작은 친절, 그런 계기들이 쌓이면서 두 가족은 패디의 농장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합니다. 문제는 농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패디 부부의 행동에는 처음부터 작은 균열이 있었습니다. 외딴 농장의 위치, 저..
사람에게 치인 뒤 혼자 있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영화 한 편이 그 감각을 그대로 꺼내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는 극적인 사건도, 감동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상영 내내 어딘가 불편하게 찔렸습니다.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조용하게 설득력 있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고립을 선택한 사람, 핀의 이야기영화의 주인공 핀은 도심 외곽 기찻길 근처에서 장난감을 수리하며 살아갑니다. 손재주가 좋고 성실하지만, 사람과 어울리는 일엔 늘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왜소증(Dwarfism)을 가진 핀에게 세상의 시선은 호기심이거나 불편함 중 하나였을 테고, 그 반복되는 경험이 그를 점점 안으로 닫히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왜소증이란 성장호르몬 결핍이나 골..
영화 시작 전까지만 해도 '또 뻔한 스포츠 성공담이겠지' 싶었는데,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던 남자가 NFL 역사에 남는 쿼터백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제가 오래 붙잡고 있던 감정 하나가 불쑥 올라왔습니다. 늦게 출발한 것이 실패의 증거처럼 느껴졌던 그 감각, 그게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커트 워너(Kurt Warner)의 실화가 보여줬습니다.언더독의 시작 — 벤치와 마트 사이에서저도 처음엔 커트 워너가 그냥 운 좋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겪은 시간의 밀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커트는 대학 풋볼 리그 하위권 팀에서 4년간 벤치 멤버(bench player), 즉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후보 자리를 지키는 선수로만 지냈습니다. 여기서 벤치 멤버란 실..
잘한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압박으로 들렸던 순간이 있으셨습니까? 영화 는 천재 소녀 메리를 둘러싼 두 어른의 교육관 충돌을 통해, 재능을 키우는 것과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과연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 묻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며 잘하는 일을 발견했을 때 기쁨보다 부담이 먼저 찾아왔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재능이 드러나는 순간, 왜 삶은 더 복잡해질까메리는 학교 첫날,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단번에 풀어버립니다. 연립방정식이란 두 개 이상의 미지수를 동시에 만족하는 값을 구하는 수학 문제로, 초등학생에게는커녕 일반 성인도 당황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메리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외삼촌 프랭크는 메리가 또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