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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못 잡는 영화'가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을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2007)은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통쾌한 해결 대신 '답 없음'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들이밉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영화가 던진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집착의 심리 — 답을 찾으려다 일상을 잃는다
영화에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사보 편집자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조디악 사건에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갑니다. 처음엔 암호문 해독에 관심을 보이던 그가, 어느 순간 가족과의 저녁 식사보다 사건 파일이 더 중요해지는 인물로 변해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묘하게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 감각은 꽤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으면, 저는 당시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떠올리고, 작은 단서들을 이어 붙이며 '혹시 이런 뜻이었을까' 하고 추측하곤 했습니다. 문제는, 확실한 정보가 없을수록 생각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복잡해진다는 점입니다. 로버트도 정확히 그 함정에 빠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반추(rumination)라고 부릅니다. 반추란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감정을 반복적으로 되새김질하는 인지 패턴으로,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풀려는 시도처럼 느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과 무력감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버트의 집착은 스크린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인지 습관의 극단적인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착적인 추적은 진실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여기지만, 제 경험상 그 집착이 커질수록 현재 일상에서 멀어지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로버트가 결국 진실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고서야 사건의 무게를 실감하는 결말은 그래서 더 씁쓸하게 남았습니다.
- 반추(rumination):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인지 패턴. 불안을 장기화시킨다.
- 집착이 깊어질수록 현재 일상과의 거리는 벌어진다.
- 불완전한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미해결 수사 — 정황은 가득한데 증거는 없다
데이비드 핀처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실제 수사 기록 수천 페이지를 직접 검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무게가 고스란히 화면에서 느껴집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의 데이브 암스트롱 형사가 택시 기사 살해 현장을 살피며 단순 강도와 다른 점들을 짚어내는 장면은, 범죄 수사에서 물증(physical evidence)이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합니다. 여기서 물증이란 수사관의 추론이 아닌, 법정에서 직접 제출 가능한 객관적 증거물을 말합니다.
유력 용의자로 떠오른 아서 리 앨런은 양손잡이였고, 과거 범행 현장 인근에 있었다는 정황도 있었습니다. 그가 성폭행 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기간 동안 조디악의 활동이 멈췄다는 점, 그의 집이 사건 현장에서 불과 45미터 거리라는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를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결정적 물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단순히 답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수사 원칙의 정직한 민낯이라고 느꼈습니다. 의심과 정황만으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 영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사건의 흐름 자체로 보여줍니다. 실제로 출처: FBI 공식 자료에 따르면, 연쇄살인(serial murder) 수사에서 범인 검거율이 낮은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피해자와 범인 사이의 명확한 연결고리 부재입니다. 조디악 사건이 수십 년간 미해결로 남은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은 공식적으로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자막이 그 사실을 담담하게 알릴 때, 화면 앞에서 저도 잠시 멍했습니다. 이게 실화라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언론의 역할 — 알 권리와 공포 조장 사이
조디악이 단순한 살인마와 다른 점은, 그가 언론을 직접 활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범행 후 암호문이 담긴 편지를 신문사에 직접 보냈고, 1면에 싣지 않으면 추가 범행을 감행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언론은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이를 보도했지만, 동시에 조디악이 원하던 유명세와 사회적 공포를 키우는 매개체가 되어버렸습니다.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디어 프레이밍이란 언론이 사건을 어떤 시각과 맥락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과 감정 반응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조디악 사건에서 언론은 암호문을 반복 게재하고 범인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조디악의 심리전에 동참한 셈이 됐습니다.
경찰이 뒤늦게 사건을 공개하고 제보를 요청했을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쏟아진 무분별한 제보는 수사에 혼선만 가중시켰습니다. 이 과정을 보며 저는 범죄 보도에서 국민의 알 권리가 어디서 멈추고 자극적 관심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은 사건의 공정한 전달자라고 여겨지지만, 제 경험상 불확실한 정보가 사람들의 상상과 결합하면 그 자체가 또 다른 공포의 원천이 됩니다. 조디악이 실제로 죽인 사람보다, 그의 편지가 만들어낸 공포가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더 오래 지속됐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출처: Poynter Institute도 범죄 보도가 사회적 공포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디악 범인은 결국 밝혀졌나요?
A.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이 수사를 종결했으며, 아서 리 앨런이 유력 용의자로 거론됐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고 믿고 싶지만, 실제 수사에서는 정황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Q. 영화 조디악은 실화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나요?
A. 데이빗 핀처 감독은 실제 수사 기록과 로버트 그레이스미스가 집필한 동명의 저서를 토대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허구적 극적 장치를 최소화하고 기록에 충실한 방식으로 연출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다만 방대한 실제 사건을 2시간 40분에 담다 보니 정보가 압축된 부분은 있습니다.
Q. 조디악 암호문은 해독됐나요?
A. 조디악이 보낸 암호문 중 일부는 해독됐습니다. 1969년 처음 보낸 세 조각짜리 암호문은 교사 부부에 의해 해독됐지만, 이후 보낸 암호문 중 일부는 수십 년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2020년에 민간 암호 해독 팀이 또 다른 암호문 하나를 해독했다고 발표했으나, 아직 공식적으로 검증된 내용은 제한적입니다.
Q. 영화가 너무 길고 복잡하게 느껴지는데 그냥 봐도 괜찮을까요?
A. 저도 처음엔 상영 시간(약 157분)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빠른 전개보다 사건의 무게와 인물의 심리를 천천히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전반부는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공들인 시간이 긴장감으로 돌아옵니다. 범죄 스릴러 특유의 속도감보다는 실화의 밀도를 즐기는 분께 맞는 작품입니다.
결론
영화 <조디악>은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결말로 끝나지만, 그 찜찜함 자체가 이 작품이 전달하려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의문에 완벽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로버트의 여정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진실을 끝내 알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오히려 오래 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집착과 집중의 차이였습니다. 집착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계속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고, 집중은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조디악 사건이 미해결로 남은 것처럼, 삶에도 끝내 답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불완전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그래서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을 이 영화가 돌아오게 했습니다. 범죄 스릴러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끝나지 않는 질문'을 가진 분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