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넘겨받는데 인수인계 자료가 거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전임자가 급하게 떠났고,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영화 을 보다가 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기억을 잃은 채 동면에서 깨어나 고장 난 우주선과 6만 명의 생명을 혼자 떠안아야 하는 주인공 바우어의 표정이, 그날 제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정보 없는 책임, 그 막막함에 대하여영화는 주인공 바우어가 동면 캡슐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기억이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 우주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동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의학적으로 이 상태를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특..
여덟 명이 저택에 모여 서로를 희생시키는 게임을 벌인다. 영화 를 보고 든 첫 생각은 "나라면 거절했을 텐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 자신감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절박함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저도 살면서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강요된 선택 — 그게 정말 선택이었을까아이리스는 백혈병을 앓는 동생의 병원비와 부모님이 남긴 빚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가던 인물입니다. 셰퍼드 램브리라는 재단 이사장이 그녀에게 만찬 게임을 제안할 때, 아이리스는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 걸 짐작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게임장으로 향한 것을 두고 "스스로 선택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저도 비슷한 감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한 시기에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