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이 겁 많고 순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 편에 서버린 경험, 저는 한 번 이상 있습니다. 1996년 작 영화 는 바로 그 감각을 법정이라는 무대 위에서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겉모습과 인상만으로 진실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마지막 장면 한 컷이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법정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 재판과 진실 사이의 거리시카고 대주교 살인 사건의 피의자 에런 스테이플러는 피범벅이 된 채 체포됩니다. 업계 최고의 변호사 마틴 베일은 뉴스 속 흉악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더듬고 눈을 내리까는 에런을 직접 만난 뒤 그의 무죄를 확신하고 변호를 맡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예전에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불안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마..
영화 《기억의 밤》의 주인공 진석은 21살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41세 중년 남자입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마주했을 때 저도 순간 멍해졌습니다. 기억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게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해리성 기억상실, 영화 속 설정이 아니다일반적으로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머리를 다쳐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억의 밤》이 다루는 건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영화에서는 해리성 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이라는 진단명이 직접 등장합니다. 해리성 기억상실이란 뇌의 물리적 손상 없이도, 극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