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넘겨받는데 인수인계 자료가 거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전임자가 급하게 떠났고,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영화 을 보다가 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기억을 잃은 채 동면에서 깨어나 고장 난 우주선과 6만 명의 생명을 혼자 떠안아야 하는 주인공 바우어의 표정이, 그날 제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정보 없는 책임, 그 막막함에 대하여영화는 주인공 바우어가 동면 캡슐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기억이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 우주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동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의학적으로 이 상태를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특..
우주 탐사 이야기인 줄 알고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블랙홀이 아니라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였습니다. 인터스텔라는 황폐해진 지구를 떠난 탐사대의 모험을 그리지만, 그 중심에는 시간을 잃어가면서도 포기하지 못한 가족에 대한 감정이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불편하게 공감했던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황폐한 지구, 그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영화 속 지구는 거의 모든 사람이 농부가 되어야 할 만큼 무너진 세계입니다. 매일 아침 밤새 쌓인 흙먼지를 털어내며 하루를 시작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달 착륙이 "소련을 속이기 위한 사기극"이었다고 배웁니다. 과학이 사치가 되어버린 사회입니다.주인공 쿠퍼는 전직 과학자이자 조종사였지만 지금은 농부입니다. 그런 그가 딸 머피와 함께 이상한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