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를 보기 전까지, 악이 얼마나 조용히 번진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폐쇄된 마을 하나를 무대로 인간의 위선과 집단침묵이 어떻게 거대한 권력구조를 만들어내는지, 이 영화는 두 시간 넘게 눈을 떼지 못하게 붙잡아 둡니다. 천용덕 이장과 유선생, 그리고 침묵하는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낸 구조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실제로 비슷한 답답함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집단침묵이 만든 마을의 질서영화 속 마을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칼이나 불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천용덕 이장의 지배 아래 서로를 감시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일인 듯 굴러가는 일상이었습니다. 성규, 성만, 덕전 같은 인물들은 모두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이장에게 쥐어 잡혀, 죄책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살아갑니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스크린 앞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웃기다가, 무섭다가, 결국 씁쓸해지는 그 감정의 흐름이 제 경험과 너무 가깝게 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반지하에서 시작된 계층구조, 그 절박함의 무게영화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와이파이를 찾아 핸드폰을 들고 변기 위로 올라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택 가족은 박스 접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처지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설정하는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닙니다. 선택지 자체가 없는 삶, 그것이 계층구조(class structure)의 바닥입니다. 여기서 계층구조란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기회의 불평등한 분배로 형성되는 ..
솔직히 저는 《설국열차》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액션 블록버스터려니 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싸운다는 설정이 좀 특이하다 싶었을 뿐이고요. 그런데 보다 보니 이건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기차라는 밀폐된 공간에 자본주의 계급 구조를 통째로 압축해 넣은 작품이었고, 제가 직장에서 겪어온 불합리한 경험들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기차 안의 계급구조, 사실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됐나《설국열차》의 배경은 단순한 SF 설정이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살포한 냉각제 CW-7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며 지구 전체를 빙하기로 몰아넣었고, 윌포드가 설계한 무한동력 열차만이 유일한 생존 공간이 됩니다. 여기서 '무한동력(perpetual motion)'이란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영구적으로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