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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인종차별, 능력 증명, 연대)

moobibig 2026. 8. 27. 11:42

목차


    1960년대 나사(NASA)에서 우주 탐사 계산의 핵심을 맡았던 흑인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가 막혀 있어서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학력이나 경력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 때문에 능력보다 먼저 평가받았던 기억이 겹치면서, 이 영화가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나사의 인종차별, 어느 정도였나

    일반적으로 나사 하면 최첨단 과학과 엘리트 집단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그 안에서도 인종 분리 정책(Segregation)이 철저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종 분리 정책이란 흑인과 백인이 같은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과 관습으로 강제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화장실도, 커피포트도, 심지어 업무 공간까지 나뉘어 있었습니다.

    캐서린 존슨은 천재적인 수학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서와 수백 미터 떨어진 흑인 전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상황을 상상해보니, 그게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너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매일 반복해서 받는 것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나사의 흑인 여성 직원들은 '유색 인종 컴퓨터(Colored Computer)'라는 직함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컴퓨터란 기계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복잡한 수식을 손으로 직접 계산하는 인간 계산원을 뜻합니다. 전자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전 시대에 이 역할은 핵심 업무였지만, 그 공로는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 흑인 전용 화장실, 분리된 식당, 별도의 커피포트 등 공간 전반에 걸친 분리
    • 핵심 프로젝트 회의 및 브리핑에서 흑인 여성 민간인 배제
    • 동일한 업무 수행에도 승진·직함에서의 구조적 차별
    • '유색 인종 컴퓨터'라는 별도 직함으로 분류, 공식 기록에서 소외
    요약: 1960년대 나사는 과학의 최전선이었지만, 인종 분리 정책이 흑인 여성들의 능력 발휘를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능력 증명이라는 이중 부담, 세 사람의 방식

    일반적으로 실력만 있으면 결국 인정받는다고들 말하는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저도 일반적인 기준과 다른 경로로 공부와 일을 시작했을 때, 같은 결과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습니다. 캐서린, 도로시, 메리,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이중 부담에 맞선 장면들이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캐서린 존슨은 극히 제한된 정보만으로 나사 내부 전문가들이 틀리게 계산한 로켓 궤도를 정확하게 수정합니다. 여기서 궤도 역학(Orbital Mechanics)이란 중력과 속도의 관계를 수식으로 분석해 우주 비행체의 경로를 계산하는 학문 분야를 말합니다. 이 분야에서 캐서린의 계산이 틀린 적이 없었음에도, 브리핑 참석은 "흑인 여성 민간인에게는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본부장이 상황의 위급성을 인정하고 그녀를 브리핑에 참석시킵니다.

    도로시의 접근은 달랐습니다. 전자 컴퓨터 IBM 7090이 도입되면 자신들의 자리가 사라질 것을 예상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FORTRAN 언어를 독학합니다. FORTRAN이란 과학·공학 계산에 특화된 프로그래밍 언어로, 당시 IBM 컴퓨터를 실제로 구동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제가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처음 다뤘을 때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는데, 도로시처럼 "앞으로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반복해서 익혔더니 결국 새로운 역할로 이어졌습니다. 그 경험이 겹쳐 보여서 도로시의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메리는 항공우주공학(Aerospace Engineering) 학위 취득을 위해 백인 전용 야간학교 수강을 요청합니다. 항공우주공학이란 항공기와 우주선의 설계·개발·운용을 다루는 공학 분야입니다. 법원에서 백인 남성 판사를 설득하는 장면은 제가 봤던 영화 속 법정 장면 중 가장 담담하면서도 강렬했습니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 이유를 명확하게 꺼내는 방식으로 판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세 사람 모두 혼자만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로시는 FORTRAN을 혼자 습득한 뒤 팀 전체가 IBM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료들을 이끌었습니다. 경쟁보다 연대가 더 단단한 성장을 만든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요약: 캐서린은 계산으로, 도로시는 선제적 기술 습득으로, 메리는 제도에 직접 도전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벽을 넘었으며, 세 사람 모두 혼자가 아닌 함께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지금 이 영화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

    영화 <히든 피겨스>는 2016년 개봉 당시 미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이후 아카데미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습니다(출처: 미국 아카데미 영화예술과학원). 한국에서도 개봉 이후 역주행에 성공하며 입소문을 탔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인종차별 문제를 다뤄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비정규직, 학벌, 직장 내 성차별처럼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직접 보면서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차별이 백인 상사 한 명의 결단으로 비교적 빠르게 해소되는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차별은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의 변화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NASA 자체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캐서린 존슨은 1953년부터 1986년까지 약 33년간 재직하며 수십 건의 우주 임무에 기여했습니다(출처: NASA 공식 홈페이지). 영화가 묘사한 1961~1962년은 그 긴 싸움의 초반부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차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 앞에 꺼내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오래 머물렀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겨우 인정받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개인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애초에 누구나 공정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가로막힌 구조를 바꾸는 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통해 하게 됐습니다.

    요약: 영화가 일부 이상화된 면이 있더라도, 구조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역사 앞으로 불러냈다는 점에서 지금도 유효한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히든 피겨스는 실화인가요, 각색이 많은 편인가요?

    A.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일부 각색이 있습니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세 사람이 실제로 나사에서 근무한 것은 사실이고, 캐서린이 존 글렌의 지구 궤도 비행 계산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것도 기록된 역사입니다. 다만 영화는 차별이 해소되는 속도나 특정 인물의 역할을 극적으로 압축·강조한 면이 있어, 실제 역사보다 다소 이상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있습니다.

     

    Q. 캐서린 존슨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 수학자였나요?

    A. NASA 공식 기록에 따르면 캐서린 존슨은 1953년부터 1986년까지 나사에 재직하며 아폴로 11호 달 착륙 임무를 포함한 수십 건의 우주 임무 계산에 참여했습니다. 2015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2016년에는 나사의 연구 시설이 그녀의 이름을 따 '캐서린 G. 존슨 컴퓨테이셔널 리서치 시설'로 명명되었습니다.

     

    Q. 도로시 본이 독학했다는 FORTRAN이 지금도 쓰이나요?

    A. 일반적으로 FORTRAN은 낡은 언어라고만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지금도 항공우주·기상·물리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현역 언어입니다. 1950년대에 개발된 이 언어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도로시가 그것을 먼저 배우기로 결단한 선택이 얼마나 앞을 내다본 것인지를 더 실감하게 합니다.

     

    Q. 영화에서 백인 상사의 역할이 너무 크게 그려진 것 아닌가요?

    A. 저도 같은 부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차별이 몇몇 선한 인물의 결단으로 빠르게 해결되는 것처럼 묘사되는 구도는, 차별의 해결이 제도와 구조의 변화가 아닌 개인의 호의에 달린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만 상업 영화의 특성상 극적 압축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그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세 주인공의 실제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렸다는 의미는 크다고 봅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캐서린이 빗속을 달려 먼 거리의 흑인 전용 화장실을 오가는 모습도, 법정에서 메리가 판사를 설득하는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도로시가 도서관에서 FORTRAN 책을 혼자 꺼내 들고 팀원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익히고, 혼자 쓰지 않고 나누는 그 행동이 제가 생각하는 연대의 가장 실용적인 형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이야기지만, 능력보다 조건이 먼저 평가받는 구조는 지금도 여러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을 증명하는 노력과 함께, 처음부터 문이 공정하게 열려 있는지를 묻는 시각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 영화가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다가 생각보다 긴 여운을 가지고 가게 되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Y3uR6zfH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