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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분위기가 한쪽으로 쏠릴 때, 혼자 다른 생각을 꺼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영화 <초능력자>를 보다가 그 감각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눈빛 하나로 사람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초인과, 그 어떤 압박에도 자기 기준을 잃지 않는 규남. 두 사람의 대결이 단순한 능력 싸움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조종 능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 — 초인과 규남의 설정
영화에서 초인은 정신 지배(mind control) 능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여기서 정신 지배란 상대방의 의지를 빼앗아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강제로 하게 만드는 능력을 말합니다. 초인은 눈빛 하나로 주변 사람을 조종해 돈을 빼앗고 위기를 모면하는데, 이 능력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trauma)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트라우마란 강렬한 심리적 충격이 남긴 상처로, 이후의 행동 방식 전체를 왜곡시킬 만큼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초인은 아버지의 폭력을 막기 위해 처음 능력을 사용했고, 이후 스스로를 지키려던 어머니의 행동에서 배신감을 느끼며 "내 능력만이 나를 보호한다"는 믿음을 굳혀갑니다.
반면 규남은 비범한 신체 회복력(regeneration)을 지닌 인물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멀쩡하게 일어나고, 초인의 전기 충격에 쓰러졌다가도 되살아납니다. 그런데 이 설정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초인의 정신 지배 능력이 규남과 아기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는 이를 "순수한 마음"이라고 설명하는데, 저는 그 순수함이 욕심 없음보다는 자기 확신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규남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 초인을 쫓는 게 아닙니다. 눈앞에서 피해 입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끝까지 달리는 겁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혼자 다른 소리를 내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냥 분위기를 따라간 적이 여러 번 있었고, 나중에 돌아보면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결정했다는 후회가 남았습니다. 그 경험 때문인지 규남이 군중 속에서 홀로 초인을 바라보는 장면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사회 심리학(social psychology) 분야에서는 이런 현상을 동조 압력(conformity pressure)이라고 부릅니다.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고전적 동조 실험에 따르면 명백히 틀린 답이라도 다수가 선택하면 약 75%의 피실험자가 최소 한 번은 이에 동조했습니다(출처: Simply Psychology — Asch Conformity Experiments). 규남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초인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을 시각화한 장치처럼 읽혔습니다.
- 초인의 정신 지배 능력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자기보호 기제로 작동한다
- 규남의 신체 회복력은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상징한다
- 초인의 조종 능력이 규남과 아기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내면의 자기 확신을 시각화한 장치다
회복력과 신뢰 — 진짜 강함이 어디서 오는가
규남이 아무리 다쳐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게 단순한 재생 능력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인과 규남의 싸움이 거듭될수록 규남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초인을 쫓습니다. 아기를 인질로 잡히고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이후에도, 동생들과 함께 대책을 세우고 다시 나섭니다. 그 끈질김이 단순한 완력이 아니라 레질리언스(resilience), 즉 역경을 겪고도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심리적 탄성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레질리언스란 심리학에서 스트레스나 충격을 받은 뒤 원래 상태 혹은 그 이상으로 회복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제 경우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노력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전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결국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한 건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그래도 일단 한 번 더"라는 작은 선택이었습니다. 규남의 모습이 그 감각과 겹쳐 보여서인지 후반부 추격 장면이 단순한 액션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반면 초인은 강력한 정신 지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점점 고립됩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혼자 도망치고, 규남 일행을 위협하는 과정에서도 타인을 수단으로만 활용합니다. 초인의 불행한 어린 시절은 그가 왜 인간관계를 통제로만 접근하게 됐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상처가 크다고 해서 무고한 사람을 이용하고 위협하는 행동이 정당해지는 건 아닙니다. 이해와 용인은 다른 문제입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 연구에서 회복력의 핵심 요인으로 사회적 연결(social connection)을 꼽았습니다(출처: University of Pennsylvania — Positive Psychology Center). 규남이 동생들과 손을 잡고 무기를 준비하고 다시 나서는 장면은 바로 그 연결의 힘을 보여줍니다. 초인이 강한 능력을 가지고도 결국 무너지는 이유가 단지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라는 것. 영화가 가장 또렷하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 사람의 능력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고 후반부 대결이 반복되면서 서사보다 액션에 비중이 쏠린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초능력 소재를 어두운 분위기와 결합하고, 선과 악의 대결을 인간의 상처와 선택 문제로 풀어낸 점은 충분히 기억에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초능력자, 실제로 볼 만한가요?
A. 제가 직접 봤는데, 한국 상업 영화에서 흔하지 않은 어두운 SF 분위기를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겁니다. 강동원과 고수의 비주얼이 몰입감을 확실히 높여주고, 능력 대결보다 두 인물의 심리 대비에서 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초능력의 원리나 세계관 설명이 다소 부족해서 설정에 집착하는 분께는 아쉬울 수 있습니다.
Q. 초인의 능력이 규남에게 왜 안 통하나요?
A. 영화에서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인물에게는 정신 지배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규남 외에 아기도 같은 이유로 면역이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이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 장치가 아니라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자기 확신을 시각화한 것으로 읽혔습니다.
Q. 초인이 나쁜 사람이 된 이유가 뭔가요?
A.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자해 시도를 겪으며 형성된 트라우마가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이 굳어지면서 타인을 통제해야만 안전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 겁니다. 그 상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행동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 초능력 소재 영화가 흥행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A. 한국 관객은 초능력 장르보다 범죄·스릴러·드라마 장르에 더 친숙한 편입니다. <초능력자>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전체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SF 장르 특유의 세계관 설명과 감성적 공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반복되는 과제로 보입니다.
결론
영화 <초능력자>를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화려한 능력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초인이 수많은 사람을 단번에 조종하면서도 결국 혼자 도망치는 모습과, 규남이 동생들과 어설프게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짜는 모습의 대비였습니다. 그 차이가 결국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진정한 강함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이 영화는 꽤 분명한 입장을 취합니다. 정신 지배처럼 타인의 의지를 꺾는 힘이 아니라, 상처와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 기준을 지키고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일어서는 레질리언스라는 것. 저는 그 메시지에 꽤 동의합니다. SF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꺼내볼 만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