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복권은 그냥 운에 맡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리라는 70대 노인이 수학적 계산으로 복권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넘겼던 것들이 갑자기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제리 앤 마지 고 라지>가 남긴 여운은 꽤 오래 갔습니다.
롤다운을 발견한 남자, 운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일반적으로 복권은 순전한 운의 게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리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롤다운(Roll-down)이라는 구조적 허점이었습니다. 롤다운이란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일정 기준, 여기서는 200만 달러에 도달할 때 잔액이 하위 등수에 분배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상금이 아래로 쏟아지는 구조인데 이 시점에는 소액 복권을 많이 사면 투자 대비 기댓값(Expected Value)이 1을 넘게 됩니다.
기댓값이란 특정 행동을 반복했을 때 평균적으로 돌아오는 결괏값을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일반적인 복권의 기댓값은 1 미만, 즉 살수록 손해입니다. 그런데 롤다운이 발동되는 순간만큼은 이 공식이 뒤집혔고, 제리는 그 타이밍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업무에서 별생각 없이 따르던 방식이 사실은 비효율적이었다는 걸 어느 날 데이터를 직접 뽑아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뭘 안다고'라는 생각에 그냥 넘기려 했는데, 숫자를 직접 검증해 보니 제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냈습니다. 제리가 복권 판매기 앞에서 직접 계산기를 두드리는 장면이 그래서 유난히 와닿았습니다.
공동체 투자로 확장된 전략, 혼자였다면 불가능했다
제리는 첫 시도에서 상당한 수익을 확인한 뒤, 아내 마지와 함께 전략을 본격화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제가 더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그다음이었습니다. 50여 개의 당첨 번호 조합 중 3개 이상을 맞히는 방식, 즉 소액 다건 구매 전략을 유지하면서 이웃 주민들을 주주로 끌어들여 투자 규모를 키워간 것입니다.
투자 풀(Investment Pool)이란 여러 사람이 자금을 모아 공동으로 운용하는 구조입니다. 기관 투자자들이 자산을 운용할 때 흔히 쓰는 방식인데, 제리는 이걸 마을 단위의 소규모 공동체에 적용했습니다. 신디, 벤자민 같은 동업자들이 합류하면서 구매 물량이 늘었고, 롤다운이 발동될 때마다 수익이 투자자 모두에게 배분되는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저도 혼자 풀지 못해 막혀있던 문제를 주변 동료와 머리를 맞댄 뒤 훨씬 빠르게 해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혼자 아이디어를 쥐고 있는 것보다 나눴을 때 오히려 아이디어 자체가 더 탄탄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제리와 마지 부부가 이웃들을 끌어들인 건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성공으로 판을 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롤다운 발동 시점을 정확히 포착해 구매 타이밍을 맞추는 전략
- 소액 다건 구매로 기댓값이 1 이상인 구간을 최대한 활용
- 마을 주민들을 주주로 참여시켜 투자 규모와 리스크를 분산
- 수익 발생 때마다 투자금을 재투입하는 복리 구조로 수익 극대화
호기심이라는 무기, 하버드 학생들과 다른 점
영화 속에서 뒤늦게 같은 구조를 발견한 하버드 학생들은 제리를 압박하려 합니다. 같은 정보를 손에 쥐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제리는 이 시스템의 허점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조용히 활용했고, 학생들은 강제 롤다운(Forced Roll-down)을 유도해 이익을 독식하려 했습니다. 강제 롤다운이란 당첨금이 기준에 도달하기 전에 인위적으로 대량 구매를 통해 롤다운을 촉발시키는 방식으로, 사실상 시스템을 조작하는 행위입니다.
제리는 정규 야간 대학 출신으로, 뉴턴의 이론을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학력이나 배경보다 끝까지 파고드는 호기심이 그의 진짜 강점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 '내가 틀렸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에 시도 자체를 포기했던 순간들이 꽤 있었거든요. 제리는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확신이 생길 때까지 검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수학적 전략으로 복권에 접근한 사례는 미국 MIT 학생들의 블랙잭 카드 카운팅 전략처럼 학술적으로도 연구된 바 있습니다.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이란 이미 나온 카드를 추적해 남은 덱의 구성을 추정하는 확률 전략으로, 카지노 측이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한 불법이 아닙니다(출처: MIT News). 제리의 방식도 이와 비슷하게, 시스템의 규칙을 어긴 게 아니라 설계의 빈틈을 정확히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400억 원의 쓰임새, 성공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제리 부부가 거둔 수익은 약 400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그 금액 때문이 아닙니다. 2022년 기준, 제리와 마지는 제리 마지 펀드(Jerry and Marge Fund)를 설립해 퇴역 군인 주거 지원, 빈곤층 의료비 지원 등에 당첨금의 상당 부분을 환원했습니다. 제리 마지 펀드란 이 부부가 복권 수익으로 설립한 지역 사회 환원 재단으로, 미시간주 배스시티 인근 공동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출처: Michigan.gov).
제리는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호기심'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거창한 학벌도, 특별한 인맥도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왜 이렇게 되어 있지?'라고 묻는 태도가 시작이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일상에서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바꾸려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복권 투자를 지나치게 안전하고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측면은 조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초기 투자 자본, 법적 리스크, 복권 규정 변경 등 상당한 변수가 있었습니다. 제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수십 번의 검증과 충분한 자금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따라 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제리 앤 마지 고 라지는 실화인가요?
A. 네,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미국 미시간주의 제리 셀비와 아내 마지가 실제로 매사추세츠 주 복권의 롤다운 구조를 활용해 큰 수익을 올린 사건이 원작입니다. 일반적으로 복권 당첨은 순전한 운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리의 경우는 수학적 분석과 반복 검증이 바탕이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Q. 롤다운 전략을 지금도 쓸 수 있나요?
A. 현재는 어렵습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해당 복권 규정이 개정되어 롤다운 구조 자체가 변경됐습니다. 제리의 전략이 가능했던 건 특정 시기의 특정 규정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으로, 지금의 복권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Q. 제리 부부는 결국 법적으로 문제가 됐나요?
A.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수사 당국이 조사를 진행했지만 제리 부부는 복권 규정을 어기지 않았고, 시스템의 허점을 합법적으로 활용했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다만 이후 매사추세츠 주 복권 위원회는 해당 구조를 폐지했습니다.
Q. 영화에서 하버드 학생들은 왜 나쁘게 묘사됐나요?
A. 같은 롤다운 구조를 발견한 하버드 학생들은 강제 롤다운을 유도하거나 제리를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지식을 공동체와 나누는 대신 독점하려 했다는 점에서 제리 부부와 대비됩니다. 영화는 지식의 수준보다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이 대립 구도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결론
<제리 앤 마지 고 라지>는 복권이라는 소재를 쓰면서도 결국 돈보다 사람 이야기를 하는 영화입니다. 제리가 롤다운이라는 구조를 발견하고 검증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거창한 배경 없이도 꼼꼼한 관찰과 충분한 검증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이유로 시도조차 포기했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성공의 진짜 무게는 어떻게 벌었느냐보다 어떻게 썼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 이룬 성공보다 함께 나눈 성공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제리 부부는 몸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일상에서 작은 불편함이나 의문을 그냥 넘기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보는 태도, 그것이 제가 이 영화에서 얻은 가장 실용적인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