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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대 간 폭력'이라는 말을 그저 사회학 교과서 속 개념 정도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윌러드에서 시작된 상처가 아비에게 고스란히 흘러내려오는 과정이, 어딘가 너무 낯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분노가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 영화는 그것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세대 폭력 — 윌러드에서 아비까지, 상처는 어떻게 흘러내려오는가
영화의 시작은 윌러드라는 인물에 집중됩니다. 전쟁을 경험한 그는 뒷산에 십자가를 세우고 매일 기도를 올리며 살아갑니다. 전쟁 후 작은 마을 카페에서 사랑을 발견했지만 소심함 때문에 고백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결국 다시 찾아가 결혼하고 아들 아비를 낳습니다. 그 과정만 보면 평범한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아내 샬롯이 암으로 쓰러지자 윌러드는 강아지 잭을 제물로 바치는 선택을 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대리 속죄(vicarious atonement)'입니다. 여기서 대리 속죄란, 자신의 죄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존재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윌러드의 광신적 행동은 신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무력감과 공포를 제어하지 못한 채 엉뚱한 대상에게 폭력을 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잃자 어린 아비를 홀로 남겨두고 스스로 세상을 등집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불편했던 것은, 윌러드가 나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웠고,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버텨보려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할 때 제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고, 엉뚱한 방식으로 통제감을 찾으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엔 그게 최선이라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상대방에게는 그저 또 다른 부담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아비입니다. 부모를 모두 잃은 아비는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복수심과 폭력적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아비는 리노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주먹을 씁니다. 아버지는 신앙이라는 명분으로 칼을 들었고, 아들은 정의라는 명분으로 총을 듭니다. 명분만 바뀌었을 뿐, 폭력이라는 도구는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세대 폭력(intergenerational violence), 즉 폭력적 대처 방식이 부모에서 자녀로 학습되고 전승되는 현상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 윌러드: 신앙과 제물이라는 명분으로 폭력을 행사
- 아비: 보호와 복수라는 명분으로 총을 선택
- 두 세대 모두 '선의'를 앞세웠지만 결과는 타인의 희생
광신 — 신앙인가, 자기기만인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목사 티가딘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패틴슨의 연기가 워낙 능청스러워서 중반까지 이 인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티가딘은 설교를 잘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읽을 줄 알며, 리노라 같은 신앙심 깊은 인물에게 쉽게 접근합니다. 그 결과는 임신과 버림받음, 그리고 리노라의 죽음입니다.
영화 속 종교 인물들은 모두 신앙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광신(fanaticism)을 행동의 근거로 삼습니다. 여기서 광신이란, 어떤 믿음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그것이 타인에게 미치는 해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로이는 신앙에 목숨을 걸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내 헬렌을 살해하고 도주합니다. 티가딘은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위치를 이용해 취약한 여성에게 접근합니다. 이들에게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 면죄부였던 셈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영화가 종교 자체를 비판한다기보다는 믿음을 개인의 욕망과 책임 회피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고 읽었습니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상대의 선택을 무시하거나, 자신이 옳다는 확신 때문에 거친 방식을 정당화하는 경우입니다. 저 역시 걱정한다는 마음이 앞서 조언을 강요하다가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좋은 의도가 자동으로 좋은 결과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아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영화의 분위기 자체도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 어둡고 눅눅한 촬영 톤, 느린 전개는 인물들이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다만 등장인물과 시간대가 많아 초반에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고, 전체적으로 무거운 호흡이 모든 관객에게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중에서도 이 정도 밀도의 서사는 흔하지 않습니다(출처: Netflix 공식 페이지).
복수 — 아비의 총은 정의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
영화 후반부, 아비는 리노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총을 꺼냅니다. 티가딘을 응징하고, 살인을 일삼던 칼 부부의 흔적을 추적하며, 마지막에는 증거를 은폐한 보안관 보데와 대결합니다. 아비의 총알은 보데의 복부를 관통하고, 보데도 숨을 거두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 결말을 두고 아비를 영웅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피해자를 위해 대신 응징했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그 시각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비 역시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그 총은 아버지 윌러드에게서 내려온 것이며, 결국 아비도 같은 고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오래된 경구입니다. 이 표현은 영어로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 하며, 선한 목적을 가진 행동이 오히려 파국적인 결과를 낳는 아이러니를 지칭합니다. 영화 속 모든 인물이 각자의 명분으로 행동했지만, 그 결과는 예외 없이 타인의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여성 인물들이 주로 남성의 욕망과 폭력에 희생되는 역할에 머무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리노라는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인물이었지만, 영화 안에서 그녀의 죽음은 결국 아비의 복수를 위한 동기로 소비됩니다. 이 부분은 영화가 지닌 한계로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엘리자 스캔런의 연기는 충분히 설득력 있었지만, 인물 자체에 주어진 공간이 너무 좁았습니다.
반면 톰 홀랜드는 스파이더맨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내고 불안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아비를 설득력 있게 소화했습니다. 미국 영화 비평 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도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자주 묻는 질문
Q.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A. 아비는 티가딘을 응징하고 살인 부부의 증거 필름을 챙긴 뒤, 마지막으로 증거를 은폐한 보안관 보데와 대결합니다. 두 사람 모두 총격으로 사망하고, 아비는 다시 긴 여정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열린 결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아비 역시 폭력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결말로 읽었습니다.
Q. 이 영화가 종교를 비판하는 건가요?
A. 종교 자체를 악으로 규정한다기보다는, 믿음을 개인의 욕망과 책임 회피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도 같은 입장입니다. 영화 속 신앙심 깊은 인물들은 결국 자신의 광기와 두려움을 신의 뜻으로 포장했을 뿐, 진정한 믿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Q. 톰 홀랜드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나요?
A. 기존의 스파이더맨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불안하고 상처받은 청년이면서도 내면에 단단한 폭력성을 품고 있는 아비를 설득력 있게 소화합니다. 제가 보면서 가장 놀란 부분도 이 점이었습니다. 특히 로버트 패틴슨의 위선적인 목사와 대조를 이루며 두 배우 모두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Q. 영화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나요?
A. 등장인물이 많고 시간대가 여러 개라 초반에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데, 저도 처음 20분은 꽤 집중을 요했습니다. 전개가 느리고 분위기가 무겁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려는 분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들여 쌓아올린 서사의 밀도는 그 무게감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악마의 정체였습니다. 영화 제목 속 악마는 뿔 달린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지 못한 채 명분만 바꿔가며 타인에게 되돌려주는 인간의 반복적인 행동 패턴이 바로 그 악마일 겁니다.
이 영화를 추천할 때 저는 늘 한 가지 전제를 덧붙입니다. 빠른 전개나 명확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선의가 어떻게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시간을 내볼 만한 작품입니다. 받은 상처를 그대로 되돌려주는 대신 잠시 멈추는 것,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영화는 가장 어두운 방식으로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