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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조직에 들어가면 결국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습니다. 넷플릭스 멕시코 오리지널 <모나르카 시즌1>은 그 믿음을 첫 화부터 조금씩 무너뜨렸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아나 마리아가 거대한 데킬라 기업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맞닥뜨리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구조였고, 저는 그 모습에서 제 경험을 꽤 많이 떠올렸습니다.
권력 승계,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
일반적으로 후계자 지명은 기회이자 영광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나 마리아가 전세기로 멕시코에 호출되어 아버지 파우스토 카란사로부터 모나르카 그룹의 차기 회장으로 지목되는 장면은, 겉으로는 극적인 신뢰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당혹감 그 자체입니다.
저도 한 번은 충분한 인수인계 없이 팀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떠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맡기는 쪽에서는 "네가 적임자야"라고 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기존 상황 파악도 안 된 채 문제 해결만 요구받는 구조였습니다. 아나 마리아가 처한 상황이 딱 그랬습니다. 기업 내 카르텔 유착, 정계와의 검은 거래, 가족 내부의 권력 다툼, 이 모든 복잡한 맥락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하나씩 드러납니다.
여기서 권력 승계(succession)란 단순히 직함을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이전 권력자가 만들어놓은 관계망과 부채, 그리고 적들까지 통째로 이어받는 과정입니다. 파우스토는 딸을 후계자로 낙점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깊이 오염된 구조를 만들어왔는지를 끝내 전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빈자리를 아나 마리아는 맨몸으로 채워야 했고, 저는 그 과정이 불공정하게 느껴지면서도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씁쓸했습니다.
- 모나르카 그룹은 멕시코 최대 데킬라 기업으로, 카르텔 및 정계와의 유착 구조가 경영 전반에 깊이 박혀 있었음
- 파우스토는 기업 정화를 목표로 아나 마리아를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핵심 정보와 실질 권한은 끝내 충분히 이전되지 않았음
- 후계자 지명 직후 아버지의 사망이 이어지며, 아나 마리아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권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짐
원칙의 붕괴, 손해를 감수할 때 비로소 보인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말은 쉽습니다. 제 경험상 그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은 언제나 나와 가까운 사람이 연루되었을 때였습니다. 아나 마리아가 기업 내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까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 파블로가 성추문 사건에 휘말리자, 그녀는 자신이 비판하던 기득권층의 방식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합니다.
저도 객관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문제에서, 가까운 동료가 연루되자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원칙이란 손해가 없을 때 지키기는 쉽고, 실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순간에야 진짜 원칙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나 마리아의 선택이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도덕적 해이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하는 위험이나 책임을 다른 누군가가 질 것이라는 기대 아래 무책임한 선택을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나 마리아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보다 가족과 기업의 명예를 앞세운 순간, 그녀는 자신이 개혁하려 했던 기존 권력층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이 아이러니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목이었습니다.
또한 가족 내 배신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삼촌 호아킨은 겉으로 화목한 척하면서도 야망에 눈이 멀어 조카를 공격합니다. 이해관계(vested interest)란 특정 결과로부터 직접적인 이익을 얻는 사람이 그 결과를 유지하거나 조작하려는 동기를 가지게 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언제든 배신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제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그 씁쓸함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부패 구조, 선한 의지 한 사람으로는 바꿀 수 없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에서 개혁자는 결국 승리한다는 공식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나 마리아가 끝에 가서 모나르카 그룹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는 결말이었습니다.
아나 마리아는 아버지의 서류를 통해 실세 아구스틴이 아버지의 죽음을 사주했다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해 그녀가 택한 수단은 정보 조작과 자금 횡령이었습니다.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부패한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부패의 방법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조적 모순(structural contradiction)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존 시스템이 너무 깊이 오염되어 있을 경우 내부에서 싸우는 사람도 결국 그 시스템의 문법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입니다.
조직 문화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확인됩니다. 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에 따르면, 부패한 조직에 새로 진입한 리더가 구조적 변화 없이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조직을 바꾸려 할 경우, 오히려 조직에 동화되거나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나 마리아의 시즌1 결말은 이 연구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또한 카르텔 경제(cartel economy)라는 맥락도 중요합니다. 카르텔 경제란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서 불법 조직이 합법적 기업과 정치권에 동시에 침투해 경제 구조 자체를 통제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출처: InSight Crime에 따르면, 멕시코의 주요 산업 다수가 실제로 이러한 카르텔 경제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으며, 모나르카 그룹이 보여주는 데킬라 기업과 카르텔의 유착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설정입니다. 드라마가 다소 과장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절제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모나르카 시즌1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넷플릭스에서 전 시즌을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 스페인어 원어로 제작된 오리지널 시리즈이며, 한국어 자막과 더빙이 모두 제공됩니다. 시즌1은 총 8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루 이틀 안에 완주하기 어렵지 않은 분량입니다.
Q. 모나르카는 우리나라 재벌 드라마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A. 후계자 경쟁이라는 구도는 비슷하지만, 카르텔과의 유착이라는 멕시코 특유의 맥락이 더해져 훨씬 어두운 톤을 유지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재벌 드라마는 로맨스나 신분 상승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모나르카를 보면서 느낀 건 시종일관 도덕적 불편함이었습니다. 권선징악이 깔끔하게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Q. 아나 마리아는 결국 경영권을 가져가는 건가요? 스포일러 궁금해요.
A. 시즌1 결말에서 아나 마리아는 아구스틴을 몰아내는 데 거의 성공하지만, 정작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는 반전으로 끝납니다. 권력을 얻으려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부패한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책임이 되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시즌2에서 이 결말이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Q.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많은가요?
A. 카르텔이 등장하는 만큼 폭력 장면이 아예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심리적 압박과 음모 중심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저는 생각보다 과격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멕시코 범죄 드라마에 익숙하지 않다면 초반 몇 화가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이내 적응이 됩니다.
결론
모나르카 시즌1은 권력 승계가 얼마나 불공정한 과정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아나 마리아가 부패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부패한 수단을 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판하던 사람과 닮아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포장되지 않고 차분하게 묘사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날카롭게 느껴졌습니다.
부패한 구조를 바꾸려면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권력을 얻는 것보다 그 권력을 가진 뒤 처음의 기준을 유지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담담하게 증명합니다. 시즌2에서 아나 마리아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저는 꽤 많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