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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걸 (성장 드라마, 상실, 죄책감)

moobibig 2026. 8. 27. 14:46

목차


    성장한다는 게 아픔을 덜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화 <마이걸>을 보고 나서야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아이가 정작 가장 큰 죽음 하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혼자 짊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성장 드라마가 보여주는 죄책감의 구조

    성장 드라마(coming-of-age drama)라는 장르는 흔히 첫사랑이나 우정을 중심에 놓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성장 드라마란, 아이가 세계의 복잡함을 처음 마주하며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서사 형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이걸>을 보고 나서 제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정면으로 다루는 건 첫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주인공 베이다는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아빠 해리, 그리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함께 삽니다. 집 자체가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공간이죠. 그런데도 베이다는 엄마의 죽음만큼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이다는 자신이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게 자신 때문이라는 믿음을 혼자 키워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어른보다 죽음에 덜 예민하다고 여겨지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건 정반대였습니다. 어른이 설명을 회피할수록 아이는 그 공백을 죄책감으로 채운다는 것입니다.

    베이다가 빅슬러 선생님의 작문 수업에서 "엄마를 죽였다"는 말을 꺼내는 장면은, 제게 꽤 오래 붙잡혀 있던 장면입니다. 저도 일이 잘못되면 습관적으로 원인을 제 쪽에서 찾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그냥 그렇게 믿어버리는 편이 어쩌면 더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그 믿음은 조용히 자랍니다.

    아빠 해리가 베이다의 불안 신호를 오랫동안 지나쳤다는 점은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모의 정서적 가용성(emotional availability) 부재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아이가 신호를 보내도 부모가 그 신호를 받아줄 준비가 안 된 상태를 뜻합니다. 해리가 조금만 일찍 베이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베이다가 그렇게 오래 혼자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 베이다는 새 시체가 들어올 때마다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며 병원을 찾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신체 증상으로 표출되는 신체화(somatization)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지하실 문이 닫혔을 때 극도의 공황 반응을 보이는 장면은, 베이다의 불안이 단순한 겁쟁이 기질이 아니라 누적된 심리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 작문 수업에서 자신의 비밀을 글로 꺼내는 행위는, 내러티브 치료(narrative therapy)의 관점에서 감정을 언어화하여 외재화하는 첫 걸음에 해당합니다.

    내러티브 치료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감정과 사건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 바라보는 심리 치료 접근법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베이다가 결국 토마스를 잃은 슬픔을 시로 써서 수업에서 발표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래서 더 힘 있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복잡하게 엉킨 감정을 억지로 정리하려 하다가 결국 노트에 그냥 써 내려갔을 때,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거창한 설명 없이 보여줍니다.

    요약: 베이다의 죄책감은 어른의 침묵이 만들어낸 공백에서 자랐고, 영화는 그것을 언어화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상실이 남기는 것, 그리고 기억의 힘

    토마스의 죽음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벌에 쏘이면 위험하다는 복선이 앞에 깔려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 장면이 실제로 오면 생각보다 훨씬 아팠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벌 알레르기로 인한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반응, 즉 알레르겐에 과민 반응한 면역계가 전신에 급격한 쇼크를 일으키는 상태가 이렇게 짧고 조용하게 아이 하나를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요. 화면은 평온했고, 그래서 더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동 영화나 가족 드라마에서 친구의 죽음은 주인공을 단숨에 성장시키는 장치로 소비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마이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베이다는 토마스가 떠난 뒤에도 한동안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작문 수업도 끊고, 호숫가에 혼자 가서 추억을 되새깁니다. 슬픔이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솔직한 이유입니다.

    베이다가 가장 후회하는 건 토마스에게 "진짜 친구"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고맙다는 말을, 미안하다는 말을 미뤄온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서로의 환경이 달라지거나 갑작스러운 이별이 오고 나면, 그 평범한 시간들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베이다의 후회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속 여름 풍경, 호수, 숲은 비극적인 사건들과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배경과 어두운 서사를 의도적으로 병치하는 기법을 영화 비평에서는 아이러니한 미장센(ironic mise-en-scène)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화면이 예쁠수록 이야기의 슬픔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효과입니다. 두 아역 배우의 연기가 이 대비를 자연스럽게 받쳐줬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애도 반응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의 상실 경험은 이후 감정 조절 능력과 공감 역량 발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칩니다(출처: NCBI,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베이다가 결국 슬픔을 시로 써서 내보이는 선택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결말 처리가 아니라,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언어로 통합하는 애도 작업의 완성으로 보입니다.

    셀리라는 인물도 짧게 짚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에서 계모 혹은 아빠의 새 연인은 갈등 유발 장치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걸>도 처음에는 그런 방향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베이다가 결국 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거창한 화해 장면 없이, 그냥 조금씩 마음을 여는 방식으로요.

    요약: 토마스의 상실은 베이다를 단번에 성장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슬픔을 정면으로 통과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동하며 영화의 진짜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이걸은 어린이가 보기에 적합한 영화인가요?

    A. 성인 관객 기준으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폭력성이나 선정성보다는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가 중심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족 영화로 분류되지만, 제 경험상 어린아이보다는 초등 고학년 이상이 감정적으로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부모와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Q. 베이다가 몸이 아프다고 하는 게 꾀병인가요?

    A. 꾀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신체화(somatization)라고 부르는데, 해소되지 않은 불안이나 심리적 압박이 실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꾀병을 부린다고 여겨지는 경우 중 상당수는, 제 경험상 이런 심리적 원인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토마스가 죽는 이유가 뭔가요?

    A. 토마스는 베이다의 반지를 찾으러 혼자 숲속으로 갔다가 벌에 쏘입니다. 벌 독에 대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즉 아나필락시스로 인해 호흡이 막혀 사망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벌집과 관련된 장면이 복선으로 깔려 있어, 이를 눈치챈 관객은 결말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구조입니다.

     

    Q. 마이걸에서 베이다가 엄마 죽음을 자기 탓으로 여기는 게 현실적인가요?

    A. 아동 발달 심리학에서 이는 자아중심성(egocentrism)으로 설명됩니다. 쉽게 말해, 어린 아이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을 자신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른이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그 공백을 잘못된 자책으로 채우기 쉽습니다. 베이다의 반응은 그런 점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됐다고 봅니다.

     

    결론

    <마이걸>을 보고 나서 성장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성장한다는 건 아픔에 무뎌지는 게 아니라, 상실을 품은 채 그 기억을 힘으로 바꿔 다시 걷는 일이라는 것. 베이다는 끝까지 토마스를 잊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시로 씁니다. 그게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게 낫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남긴 건 감동보다 그 작은 행동의 촉구였습니다. 꼭 명작이라서가 아니라, 솔직해서 좋은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2zrtbtxuNQ